별안간 똥이 그리워진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는 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덕선생은 종본탑(宗本塔) 동쪽에서 살았었는데 마을 안의 똥거름을 쳐내는 것으로써 생계를 삼고 있었는데 마을에서는 그를 모두 ‘엄행수’라고 불렀다. 행수는 상일을 하는 늙은이의 일컬음이요, 엄은 그의 성이다.
“그는 뒷간에서 사람의 똥, 마구간에서 말똥, 외양간에서 쇠똥, 집안 구석구석에서 닭똥, 개똥, 거위 똥, 돼지우리에서 돼지 똥, 비둘기 똥, 토끼 똥, 참새 똥 등 똥이란 똥은 다 귀한 보물처럼 모조리 걸레질해 가도 누가 염치 뻔뻔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단 말일세. 혼자 이익을 남겨 먹어도 누가 의리를 모른다고 말할 사람이 없고 많이 긁어모아도 누가 양보성이 없다고 말할 사람이 없네.”
엄행수는 비록, 똥거름을 쳐내는 상일을 하지만, 심성만은 착한 사람이었다. 똥을 귀한 보물처럼 여겼으니 어찌 똥이 더럽다고 말할꼬. 똥도 알고 보면 우리 몸 일부인 것을, 현대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선생의 작품 속에 ‘똥’이란 물질을 매개체로 시대를 아우르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교훈을 풍자를 통해서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고 인간성의 긍정과 평등사상의 똥 철학이 녹녹하게 녹아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지 더러우니 만지지 마라!”라는 것은 똥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아이 몸에 묻은 똥 치우기가 귀찮아서 한 어른들의 상투적인 말일 게다. 한자 사전에서 똥을 찾아보면 분(糞)이다. 즉, 사람이 누는 똥에 사람 인人을 하나 더 붙여 인분(人糞)이라 한다. 분은 쌀[米]에 따를 이(異)조합어로서 똥은 쌀이라는 뜻이다. 쌀은 생명을 부지하는 음식물인 셈이다.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면 똥은 생성될 수 없고 그러면 땅[大地]는 말라죽어 생명체는 살 수 없게 된다.
똥은 생명과도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똥을 무조건 더럽다.’라는 잘못된 인식, 이런 생각은 버려야만 한다. 똥이 내 몸 일부가 아닌 듯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아 불쌍하다. 하루라도 똥을 누지 못하는 날이면 속이 불편해서 불안하다. 그래서 똥을 잘 누는 것도 큰 복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싸는 게 최고”라는 말이 생겨났을 성싶다. 세상에 똥을 누지 않는 생물은 없다. 심지어 무생물까지 똥을 쌀 것 같다. 우리가 발견 못했을 뿐이지만, 지렁이와 굼벵이도 흙을 먹고 똥을 누고, 물속에 사는 다슬기도 똥을 누고, 똥파리는 똥을 싼다.
똥을 보면 동물을 알 수 있고, 똥 색깔과 냄새를 보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시커멓고 냄새가 지독한 똥은 뱃속에 탈이 났다는 징후이고, 된장처럼 누렇게 잘 익은 똥은 오장육부가 편안하다는 징조다. 똥은 반드시 배설해야 만이 더러운 이물질로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똥은 맛있는 먹잇감이기도 하다. 물속에 동물들 똥이 떠있으면 물고기들은 그 똥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또한 똥은 쇠똥구리나 애벌레에게는 중요한 먹잇감이며 똥은 씨앗을 멀리 퍼뜨려 자라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똥은 흙이 되고 영양분이 되어 온갖 생명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똥은 영원한 생명의 원초이다.
이것은 배내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배내똥은 갓난아기가 태어나 맨 처음 싸는 똥을 말한다. 또한, 사람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 싸는 똥을 말하기도 한다. 똥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불멸의 원칙과 철저하리만큼 버림과 나눔의 공생법칙의 매개체가 똥이다. 갓난아이가 눈 배내똥과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똥,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가장 순수함 그대로이다. 더럽다, 더럽다. 해도 똥만큼 친근한 물건도 없다. 누구나 똥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찌푸리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것도 똥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요즈음 똥은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똥’이란 소재를 지금과는 다른 각도에서 다루기도 한다. 특히 똥은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다. ‘똥’에 대해 신선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들려주기도 한다. 어느 동화 속의 똥,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똥을 참 좋아한다. 자기가 눈 똥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버리지 못하게 울기도 한다. 또 스스럼없이 만지려 든다. 그리고 똥 이야기만 할라치면 눈을 반짝이며 아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아이들에겐 아직 자연의 순수성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머니 품 같은 대지, 자연은 똥으로 식물을 키워낸다. 똥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런 자연의 순수성을 빼닮았다.
똥은 생명의 원초이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똥 누는 그 시간만큼 가장 행복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남의 눈을 피해 조용히 맛보는 배설의 기쁨에 만족하는 것이다. 때로는 걱정도 하고 신경질도 낸다. 똥이 내 몸 안에서 시원하게 빠져나갈 때면 새처럼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똥과 단둘이 마주하며 대화하고 친해지고 싶어서이다. 똥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보다 구수하고 친근하다. 화낼 수만 없는 이야기가 똥 이야기다.
똥에 대하여
똥 이야기기가 나올라치면 구박받기 십상이다 나는 똥이요 똥은 나다 똥이 밥이요 밥이 똥이다 똥은 내 집이다 똥 버무려 먹는 재미로 하루해가 즐겁다 맨 날 똥을 흠모한다, 염치없이 그릇 안에 샘을 팠다 아내 자궁만큼 팠다 그리고는 똥을 퍼 마신다 날름날름 꿀꺽꿀꺽, 꼴깍꼴깍 벌컥벌컥 빛깔 좋은 곰삭은 똥 달콤함이 구순 안에 유입될 때 구불구불한 창자를 통과하고 어둠 안에서는 달이 뜨고 움직이는 인육(人肉)인 것, 인생의 종착역인 것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 탱탱하게 컹컹대는 것 봉곳한 '묫똥'인 것 똥이 그리운 걔들일지라도 배냇저고리에 유입된 구순의 생명까지
걔들은 철저하게 버려지는 똥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내 몸과 이별하는 똥 밥의 그 변명 말이다 향미(香味) 걔들,
똥 밥과 마주하면 세상이 온통 시원하다 황금 들판에 오롯한 생명처럼 내 고깃덩어리 살점인 것들 몸속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가려운데 긁어주고 꺼무데데한데 매만져주는 더한 생의 증거물인 삶의 즐거움인 아랫목처럼 뜨끈뜨끈하다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구속된 분리는 생명의 자유처럼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배제된 이것 생명의 결영(缺盈)이다 나는 이미 배내똥에 구속되었었고 구애적 성격에 분리되어 똥 한 폄 남겨두고(배웅하는) 생의 구족이다 똥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흙과 바람, 하늘과 비, 짐승의 밤낮으로 섞은 흐뭇한 표정들 살코기가 되고 양념이 되고 먼지가 되지만 내 몸 안팎에 머물다 간 나는 이미 곰삭아버린 맛깔스러운 씨앗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웃지 못할 똥에 관한 일화가 있다. 추운 겨울 미술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애들처럼 4B 연필로 손 데생을 하고 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차가운 도시락이 잘못되었는지 갑자기 아랫배가 터부룩하고 곧 내 몸 일부가 항문을 비집고 나올 것만 같았다. 힐끔힐끔 호랑이 선생님의 얼굴을 살피면서 쿡 참았지만, 더 이상은 견뎌낼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말씀드릴 틈도 없이 그냥 후다닥 뛰었다. 교실에서 한 30미터 떨어진 화장실이 그렇게 멀어 보였다. 화장실 문을 꽝 박차고 바지를 급히 내리려는 순간 아뿔싸 된장 같은 똥이 뭉클하고 쑥 빠져나왔다.
두툼한 내복을 끼워 입은 탓도 있지만, 혁대가 풀리지 않아 미처 바지를 내리지를 못했던 것이다. 바지를 내리고 아래를 살펴보니 내복에는 누렇게 익은 똥 한 무더기가 묻어 있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얼떨결에 똥이 다 빠져나왔는지 속은 편안해졌다. 걱정되는 것은 내복에 묻어 있는 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우선 헌책을 몇 장 뜯어 내복에 묻은 똥을 조심스럽게 쓱쓱 닦아냈다. 화장실 앞에서는 애들 목소리가 조잘조잘 들린다. 오후 첫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엉거주춤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을 나와 손을 씻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찬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양손이 시리다 못해 새빨개졌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애들은 무쇠 난롯가에 빙 둘러앉아 참새처럼 조잘댄다. 혹시나 구린내가 날까 봐서 애들 옆에 가지도 못하고 멀찌막이 떨어졌다. 오후 내내 마음 졸이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집에 와 몰래 바지를 내리고 내복을 살펴보니 똥이 된장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구린내도 아직 남아 있다. 지천명을 넘긴 지금도 똥 이야기만 나오면 혼자 킥킥 웃곤 한다.
요즈음 집 화장실은 대부분 안방과 거실에 붙어 있다. 그만큼 똥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근거다. 똥이란 우리를 일깨워주는 씨앗이다. 요즈음 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똥을 눈 후 꼭 몇 차례씩 내 똥을 살피는 버릇이다. 똥이 굵고 빛깔이 선명하면서 둥둥 떠올라 움직이면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똥에서 고리타분한 냄새가 난다거나 찔끔찔끔 가늘게 가라앉는 똥을 눌 때면 몸 어디엔가 고장은 없는지 걱정하곤 한다. 『똥 밥에 대하여』란 나의 서툰 시詩가 여기 있다.
똥은 내 몸 일부란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나니, 내 몸 안에서 내 몸 일부가 떨어져 나올 때보다 더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는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누구나 잊기 십상인 자기 자신인 신성한 물질, 똥을 통해 죽음의 생각들을 정화시켜 생태에너지를 재생할 때 인간의 삶도 똥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사랑스러운 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