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위에서 알선(斡旋)과 주선(周旋)이란 말을 가끔 듣는다. 알선과 주선은 본래 좋은 의미를 지닌 말이나 그 쓰임이 약간 다르다. 용도(用途)가 약간 다르다. 알선은 주로 부정적(否定的)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불법대출 알선’ ‘알선 수뢰혐의’ 같은 예에서 보듯이 부정적인 경우에 많이 오르내린다. 알선은 주선과 같은 의미로 남의 일이 잘 되도록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힘을 써주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알과 선은 모두 ‘돌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남의 일이 잘 되도록 하려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발품도 팔아야 하고 여러 사람의 비위(脾胃)도 잘 맞추어야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남을 위해 고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다. 요즘은 이런 일이 으레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려는 것으로 그 풍조(風潮)가 바뀌었다. 영어로 알은 라운드(round)로 풀고 선은 리볼브(revolve)로 푼다. 라운드에는 ‘돈다’ ‘선회한다’는 뜻이 들어있고 리볼브에는 ‘궁리하다’ ‘곰곰 생각하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영어에서 암시하듯이 알선은 이처럼 이리저리 계산을 해가면서 선[line]이 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부탁받은 일이 잘 풀리도록 주선해주는 것이다. 계산을 한다는 것은 손익(損益)을 따진다는 것이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측은(惻隱)한 마음에서 단순하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반대급부(反對給付)를 바라는 것이고 변태(變態)를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장물(臟物)인줄 알면서도 수수료를 받고 매매를 주선해 주는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시비(是非)를 가리지 않는다. 우선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다. 후일(後日)을 생각지 않는다. 뒷일을 생각지 않는다. 그것이 부머랭(boomerang)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생각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못한다.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멀기 때문이다.
알선(斡旋)이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면 주선(周旋)은 측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주선도 반대급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런 점이 알선과 다른 것이다. 주선은 일을 이루어 내거나 잘 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리저리 힘을 써주나 반드시 반대급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서로 돕고 산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알선이 때로는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것이라면 주선은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하는 것이다. 선(線)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常識)의 선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불문율(不文律)이다. 누구나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다. 그리고 그것은 법(法) 이상의 것이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무죄(無罪)라 해도 상식의 선을 넘어서면 주위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지탄(指彈)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업보(業報)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양심(良心)에게 물어볼 일이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반대급부를 바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 것인가?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것인가? 아닌가? 측은한 마음에서 하는 것인가? 공명심(功名心)에서 하는 것인가? ‘잔의 물이 넘치는 것은 알아도 지식(知識)이 흘러넘쳐 자신의 품격(品格)을 떨어드리는 것은 모르느냐?’는 선사(仙師)의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선과 주선의 경계를 허물고 왔다 갔다 하다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가? 허욕(虛慾)을 버려야 한다. 허망(虛妄)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분수껏 살아야 한다.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추어야 한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사냥을 하기 때문에 업(業)을 짓는 것이다. 그 업에서 헤어나야 한다. 거기가 바로 피안(彼岸)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