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는 지난 7월 22일 포천시청 시정회의실에서 2013년 “포천 600년”을 맞아 기념사업인‘디지털포천문화대전’편찬 착수보고회를 지난 22일 개최했다고 한다. 이 사업은 포천 백과사전을 디지털콘텐츠로 구축해 국민들에게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포천시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우리시 역사문화의 정체성이 보다 명확히 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하고, 이 사업을 시발점으로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 거론하는 “포천 600년”을 기념한다는 내용은 시립예술단 공연과, 포천미래포럼이라는 단체에서도 서슴없이 발표하고 있으나, 포천시가 홍보하는 2013년이 과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지 600년이 되는 해라고 특정한 것에 대해, 관심 있는 시민들은 어떠한 근거로 조선 태종 때를 기점으로 거론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그래서 “포천”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된 시점에 대한 사실여부를 기록을 중심으로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996년 11월 30일 삼판 발행한 포천군지 제1편 총설, 제1장 연혁 5쪽의 내용은 이렇다. “940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 포주(抱州)로 개칭하였고, 995년(성종 14년)에는 십도제(十道制)를 채택하여 도단련사를 두고 포천군이라 개칭하여 포천군의 이름이 처음으로 생겼다. 1005년(목종 8) 도단련사를 폐지하고, 1018년(현종 9) 양광도 양주군에 이속시켰으며, 1172년(명종 2) 양주군에서 분리하여 감무(監務)를 두고 포천군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후 200년간 큰 변동 없이 내려왔다. 1413년(태종 13) 팔도제(八道制) 실시와 더불어 포천현(抱川縣)이라 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618년(광해군 10) 포천, 영평을 합쳐 도호부(都護府)를 두고 감영(監營)을 설치하였다. 다시 1623년(인조 1) 포천, 영평으로 분리하고 양주진관(楊州鎭管)에 소속시켰다.”
위의 기록과 자료를 기준으로 역사 속에 지방제도를 확인해 보면, 고려 초기에는 주․부․군․현(州府郡縣)에 지방관을 모두 파견하지는 못하여, 지방관이 없는 속군(屬郡)·속현(屬縣)이 많았고, 속군․속현은 주군(主郡)·주현(主縣)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지방관의 파견과 관련하여 1996년 발행한 포천군지에 기록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고려 성종 14년(서기 995년)에 이미 포천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처음에 포천군은 관리가 파견되지 않은 양주군의 속군으로 있다가, 후에 포천군은 양주군과 분리하여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포천시청 홈피에 포천시 소개 연혁에는 “포천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 고려 초에 와서 포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다시 조선조에 포천(抱川)이라는 오늘의 땅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포천시청 홈피의 내용에는 고려 성종 때인 서기 995년에 처음 포천군이라는 지명이 사용된 기록을 무시하고, 조선 태종 1413년을 기준으로 포천이라는 지명사용의 시작점으로 하고 있어, 포천군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포천시는 418년의 지명역사를 통째로 드러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역사적 기록의 내용을 고치거나 정리할 때에는, 새로운 자료의 발견이나 기존의 내용을 바꿀만한 확실한 반증의 자료를, 학계의 고증과 관계기관이나 단체들의 확인절차를 거친 후, 관련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통해 그 변경된 내용을 고지한 후 기록을 변경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포천군지에 기록된 포천이라는 지명과 관련한 어떠한 변경 사유가 제시된 바도 없고, 이를 반증할만한 객관적인 근거자료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역사적 시기를 특정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상처와 왜곡을 겪었으며 우리의 정체성을 깊이 훼손되기도 했다. 그러니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사실 관계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해석하는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체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할 때는, 그 시작에 앞서 확실한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역사와 관련해서 시기를 특정 하는 사업은 자칫 한번 오류를 범하면, 그 결과로 사업자체의 의미마저도 퇴색될 수도 있으니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천시 학예연구사를 비롯한 “포천 600년”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들은 1996년 포천군지 편찬과 관련된 집필위원이나 자문위원 그리고 역사편찬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포천이라는 지명을 처음으로 사용한 시점이 과연 고려 성종(995년) 때인지, 아니면 조선 태종(1413년) 때가 확실한지를 충분히 자문 받아서, 자칫 온전한 지명역사가 훼손되지 않도록 사실에 근거한 기록유산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번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