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가 있을 때 일화입니다. 그곳 주막집 작은방에 거하며 몇몇 관리의 제자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열다섯 살 황상(黃裳1788-1863)이 찾아와 뒷자리에 앉아 엉거주춤 글을 며칠 배웠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나고 다산은 이 수줍은 소년의 총명을 대번에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황상에게 문사(文史)를 공부하라 권했는데, 그는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게는 세 가지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먼저는 머리가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이 제 병통입니다”
황상의 진실한 모습을 본 다산은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외우는데 민첩하면 소홀하고, 글짓기가 민첩하면 글이 들뜨고, 깨닫는 것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병통인데, 네게는 그런 것이 없어서 좋구나. 그러니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라”며 삼근계(三勤戒)를 주었습니다.
황상이 과거를 봐도 출세할 수 없는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문학의 세계로 나가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황상은 스승의 교훈을 평생 마음에 깊이 새기며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황상의 나이가 일흔을 넘었을 때 다산을 다시 찾아뵙습니다.
그가 그 때의 일을 회고 하며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귀향 살이 20년 동안에 날마다 저술만 일삼아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습니다. 제게 三勤을 가르쳐 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 몸으로 가르쳐주시고 직접 말씀을 내려 주신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귓가에 쟁쟁합니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전설적인 다산의 踝骨三遷 고사입니다. 실제로 다산은 평생 3만권의 고서를 탐독했고. 무려 6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해 조선 사상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세상에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요행을 부려 성공하는 일도 없습니다.
명필이 되려면 붓이 일천 자루가 잘라지고. 벼룻돌밑바닥이 일곱 번 구멍이 나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踝骨三遷의 교훈을 명심하면서 부지런히 또 부지런히 성실하게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