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에 도착하기 전 먼저 스마트폰으로 오산시를 검색해 보았다. 오산시 연혁은 한마디로 격동과 변화다. 1941년 수원군 오산면으로, 1960년 화성군 오산읍으로, 1989년 오산시로 승격된 도시다. 오산시는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 소속 제21보병부대 및 제52 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북한군과의 최초 전투를 한 곳으로 알려진 고장이다. 오산시 인구는 18만 정도.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오산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시청 앞 숙박업체에 들어가니 시설도 좋고 숙박비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아침식사는 시청 근방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다시 운동화 끈을 졸라맨 후 평택을 향해 걷는다.
일반국도 옛길로 걷는데 차량통행도 적고 인적도 드물었다. 길옆 공장은 잘 가동 되는 것 같고 대체적으로 포천에서 보던 공장과 다른 제법 규모가 큰 공장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우리는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캐캐 묵은 이야기, 우리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진위면에 도착했다. 진위면 사무소는 울타리가 없고 공원화 되어 있었다. 면민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잘 만들어져서 휴식하기 참 좋았다. 시기가 바쁜 모내기철이라 면사무소에 오고가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비상용 건빵과 칠레산 포도로 간식을 하고 다시 걷는다. 진위면에는 유림회관이 있었는데 한옥으로 잘 지어져 선비촌 같아 보였고 멋스러웠다. 벌판을 가로 지르는 농로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걷기가 아주 편하고 좋았다. 주위에는 모심기가 한창이었고 모를 심기 위해 로타리치고(써레질) 물을 잡아 둔 농지만 봐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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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걷다보니 고속도로를 바로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도로가 나타났다. 점심은 굴다리 건너 안성시 위서면 신하리 밥집에서 먹고 평택시 쪽으로 다시 와서 평택시 도일동으로 걷는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평택시고 고속도로 건너편은 안성시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을 보며 나도 저 길을 자동차로 저렇게 달렸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달리는 차가 참 좋아보였고 딴 세상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도일동 고갯길은 걷기가 힘들었다. 일반차량은 볼 수 없고 대형 덤프트럭만 많이 다녔는데 근방에 산을 훼손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개발을 많이 한다. 경기북부보다는 남부 쪽이 살기가 좋아 보였고 풍요로운 것 같다.
걷다보니 평택시 세교동에 도착했다. 숙박지는 정했지만 저녁밥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였고 아파트는 즐비했지만 식당은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발이 아파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먹어야 걸을 수 있고 살 수 있으니. 아기걸음으로 걸어 상가들이 즐비한 곳으로 나갔다. 우리가 지금 무모한 짓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너무 힘이 드니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식당을 골라 저녁식사를 한다. 삼겹살 맛이 꿀맛이었다. 둘이서 4인분을 먹고 간신히 또 조심조심 천천히 걸어 모텔로 돌아왔다. 서로 아픈 다리를 마사지 해주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 주며 휴식하며 잠을 청했다. 내일 잘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