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는 늘 보복해 왔다. 역사는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않아도 보복한다고 했다.
서기 642년 겨울 평양에서는 역사적인 우리민족의 첫 평양회담이 열렸다. 신라의 김춘추와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회담이 열린 것이다. 백제의 공격으로 40여개의 성을 빼앗긴 신라는 실권자인 김춘추를 북쪽의 고구려로 보내 양국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논의케 하면서 전쟁을 피해보려 했으나 그 당시의 연개소문은 쿠테타를 이르켜 집권한 새 권력자 막리지였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의 첫 평양 회담은 이렇게 결렬되었다.
실망한 신라의 김춘추는 당나라로 발길을 돌려야 했고 당나라와 굴욕적인 동맹을 맺게 되었고, 우리 민족 최초의 외세인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렸다. 이렇게 첫번째 평양회담의 결렬로 인해 우리 민족은 광활한 대륙 민족에서 반도국가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평양 회담으로 그로부터 약 1300여년이 지난 1948년 4월 남한의 김구, 김규식과 북한의 김일성, 김두봉과의 4김 회담이 열려 외군철수, 분단정권수립배격 등의 합의를 했지만 미국과 소련. 남북한의 분단세력·친일파·공산독재정권으로 적화통일하려는 세력들의 반대로 남북4자회담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두 번째 평양회담의 실패로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게 되었고, 지구상의 하나 남은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다.
세번째 평양회담은, 그로부터 52년 뒤인 2000년 6월 15일 남한의 김대중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열렸다. 이 회담을 한국 현대사 연구가인 부르스 커밍스는 "한민족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지적한 6·15공동선언이 만들어졌다. 5개항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대결과 증오로 얼룩진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관계로 바뀌어 가는가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몸서리쳐지는 북한의 세습독재정권으로의 적화통일야욕에 의하여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라는 남북합의조항을 위반한 2차례의 핵실험과 천안함 폭파, 연평도 도발 등으로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한반도는 전쟁의 위험에 빠져있다.
과거 두 차례의 역사적인 평양회담의 실패의 결과를 안다면, 그리고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르게 인식한다면 남북한 당국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우리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주변 열강도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우리는 두 쪽으로 갈라져 민족의 에너지를 서로 싸우면서 소진하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이다.
핵무기는 재앙일 뿐이다,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망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는 늘 보복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