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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9] 버무린 가족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7월 05일
↑↑ 자귀나무꽃. 흔하지도 귀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왠지 마음이 끌리는 꽃이다.
ⓒ (주)포천신문사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부부는 일생에서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술서인 적천수(滴天髓)에 “부부인연숙세래(夫婦因緣宿世來)”라는 말이 나오는데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는 뜻이다. 또한 “부부는 전생에 원수끼리 만나고,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였던 사이가 환생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가족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부부는 전생의 한을 부부로서 함께 살면서 사랑과 환희로 풀어내고, 자식은 전생에 못다 갚은 무거운 짐을 이승에서 살면서 다 갚으라는 뜻이 녹아 있다. 하지만 부부 인연도 세태에 따라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다시 말하면 부부의 가벼움 같은 신조어 말이다.

남녀가 좋은 인연을 맺어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다 보면 ‘알콩달콩’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눈물과 분노, 갈등과 미움으로 티격태격 다투면서 살기도 한다. 미움이 지나쳐 남남으로 돌아서기도 하지, 요즈음 세상은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느지막하게 헤어지는 황혼 이혼도 성행하고 있다니 세상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마는 이해한다.결혼한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결혼 30주년이다.

30주년을 진주혼식(眞珠婚式)으로 부른다. 진주혼식은 서양 풍속에서 결혼 서른 돌을 기념하는 의식인데 “부부가 진주처럼 사랑이 익어 빛난다.”라며 진주 제품을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는데 진주는 어떤 보석 못지않게 인간의 사랑을 받는 보석이다. 진주는 인고의 세월 속에 아픔을 견디어 내야만이 탄생할 수 있는 보석이다.

옛 로마 사람들은 진주를 조개의 눈물이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진주를 선호한다. 진주는 탄생석 중에서 유월의 보석에 해당한다. 건강과 장수, 행복과 부귀의 보석이다. 은은한 빛깔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혹적이다. 진주의 눈물은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나 진주보다 더 값진 선물이 있을 법도 하다.

30년 긴 세월을 뒤돌아보면 나의 주변에 방황하는 케케묵은 추억이 빼곡하다. 서로 헤어지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살다 보면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많지만, 개중에는 백팔십도 다른 것도 발견된다. 우선 나는 체질적으로도 아내와 정반대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다. 얼굴은 늘 술 마신 사람처럼 벌겋다. 그리고 목소리가 크고 흥분을 잘한다. 찬 음식보다는 더운 음식을 좋아하고 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한 여름철에도 홑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서로 다른 몸바탕(사람의 체질) 때문에 잠자리에서까지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신경전을 펼친다. 아내는 보일러 온도를 낮추라고 하고 나는 올리라 하고 그러다가 절충 온도에서 잠정적으로 합의를 봐 잠을 잔다. 그런데 새벽녘에 이상해서 잠을 깨고 보면 실내온도가 내려가 있다. 내 몸이 온도를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잠에 취한 채 거실로 나와 온도를 올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이런 현상은 겨울철에 일어나는 우리 집의 진풍경이다.

아무튼, 겨울은 추워서 싫다. 아내는 더운 것보다 추운 것이 좋단다. 에어컨 바람이 없으면 못산다는 아내, 그리고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나, 극과 극이다. 그래도 30년을 함께 사니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신기할 것까지는 없다. 사계에도 때에 따라 확연히 다른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만물이 파릇하고 여름은 청춘처럼 왕성하다. 가을은 익어가는 완숙처럼 노련하고 겨울은 다시 시작을 알리는 우리네 하얀 집이다. 이처럼 다른 여럿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자연 일부이기에 오랫동안 붙어살고 싶어 하고 때가 되면 이별을 한다. 붙어살다 보니 나의 장단점, 아내의 장단점, 아들의 장단점이 모두 노출되어 비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인생은 비밀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재미가 쏠쏠할 텐데, 발가벗겨지다 보니 무미건조한 것 같다. 가끔 생활의 주도권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면 상대방의 단점을 공격하는 나쁜 습성을 표출한다. 싸움에서 ‘지피지기면(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데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늘 무승부이기 일쑤다.

아내와 함께 식사할 적에는 속도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밥은 꼭꼭 잘게 씹어 넘겨야만 건강하다는 아내의 충고가 잔소리로 들릴 때면 가자미눈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사는 것이 특별한 게 없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텔레비전 채널 선택 때문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는 뉴스를 보자, 아내는 영화를 보자며 결국, 성질 급한 내가 거실에서 안방으로 밀려나 다른 텔레비전을 켠다. 결국은 전기낭비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우린 이렇게 붙어산다. 즐거우나 슬프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붙어산다. 인생은 붙어살다가 홀로 가는 외로운 나그네이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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