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정상에 올라오니 반대편 산 아래로 신천지가 기다리고 있다. 설악산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의 산세가 펼쳐져 있고 날씨마저 좋아 속초시내와 아련하게 동해바다까지 보일 듯하다.
오른쪽으로는 녹색의 푸르름이 뒤덮인 화채능선이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 왼쪽 옆으로 우리가 하산길로 계획하고 있는 천불동 계곡이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까이는 중청봉 대피소가 보이고 멀리 울산바위와 범봉, 신선봉, 1275봉, 마등령과 황철봉까지!
친구는 마치 자기마을 동산에 온 듯 손으로 설악산의 모든 봉우리를 가리키며 일러주지만 난 그저 속초시내에서 올려다보던 대청봉에 올라 이름 모를 바위산과 봉우리들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워 좌측에서 우측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몇 번이고 돌아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는데 마치 아무도 못하는 일을 혼자 해낸 듯이 들떠있는 감정을 진정시켜야했다.
ⓒ (주)포천신문사
중청으로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6월의 진달래를 꼭 보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색이 바랬다고 친구는 아쉬워하지만 고산지대의 심한 일교차를 극복하고 피어난 진달래는 키가 아담하고 꽃송이도 작고 짱짱하며 색이 진하고 야무지게 곱다.
중청 대피소로 내려와 헬기장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으며 바라본 대청봉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눈부시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올라왔던 고생도 씻은 듯 잊혀지고 대청에서 소청까지 1.2km의 거리는 동네 산책길 보다 더 가벼워 표시판을 보고서야 거리를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이래서 자꾸만 산에 오게 된다고.. 정상에 오르면 고생했던 그 이상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소청으로 해서 봉정암으로 가려고 한다. 지도에서 볼 때는 소청에서 잠깐 왼쪽길로 들어갔다 나오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 길이 완전 꺾어진 언덕길이라 내려갈 땐 어떻게 내려갈지 몰라도 소청에서 봉정암까지는 1.1 km 꺾어진 경사로 다시 올라오는 길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 거라며 친구는 걱정하면서도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우리는 좌측 봉정암 길로 들어섰다.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길 초입에서는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이 가까이 보인다.
예전에 용아장성을 갔던 친구는 뾰족뾰족한 바위를 넘고 또 넘으며 좌측을 보나 우측을 보나 천 길 낭떠러지라 중도 포기할 수도 없고 엉금엉금 기어서 저 바위를 넘었다고 무릎에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서 왔었는데 실제로 현장을 보니 그 불안과 두려움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 같으면 저 용아를 보는 순간 포기했을텐데…. 난 절대 저곳은 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저곳을 지나 뒤로 이어지는 기암괴석의 공룡능선까지는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봉정암 사리탑과 용아장성 바위를 가까이 당겨서 찍은 사진은 친구가 찍은 사진이다. 난 사리탑은 보지도 못했는데 여러 번 와 본 사람과 처음 와보는 사람은 보는 것도 다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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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산등성이에서 아까부터 헬리콥터가 떠나질 않는다. 아침 오색에서 출발하는 시점에도 사고가 있었는지 환자를 업고 내려 오는 것을 보았는데 큰사고가 아니기를… 모두 무사안전 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봉정암 내려가는 돌계단에 스님 한분이 헬리콥터가 떠있는 한계령 방향으로 앉아 기도를 드리신다. 이 스님도 내생각과 같지 않을까.
경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시간은 아무리 봐도 계산이 안나오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비선대까지는 가야할텐데…. 우리는 결국 봉정암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소청으로 다시 올라왔다. 400m 지점까지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한 시간도 넘게 걸린 듯 하다.
대청봉 올라오는 길 보다 경사가 더 심한 것 같아 숨을 몰아쉬며 다음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젠 희운각 대피소를 거쳐 천불동 계곡 비선대 신흥사길과 설악동 소공원까지 9.8km를 내려가야 한다.
소청에서 내려다 본 천불동 계곡은 마치 거대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설악의 모세혈관을 보는 듯 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시간은 오후 두시가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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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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