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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형출] 김승진 시집『 새벽항구』를 읽고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5월 24일
ⓒ (주)포천신문사

“시한부 삶이지만 사랑의 끈 놓지 않겠습니다.”라는 시인에 대한 국방일보 인터뷰(2009년 6월 3일자) 기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숨이 멈추는 듯한 전율에 눈물이 나다 못해 눈물이 마르고 있었다. 죽음은 누구나 다 한번은 맞이할 내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한다. 죽음이 삶의 화두이기에 나도 죽음에 대해 몇 편의 시도 짓고, 수필도 썼다.

나는 「기형도 작품에 나타나는 그로데스크 리얼리즘 미학」논문 머리말에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기형도 시집을 펼칠 때마다 원망, 책망, 절망 그리고 죽음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유일한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제에서부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또한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 등장하는 불운의 시인들(김민부, 임홍재, 송유하, 김용직 김만옥, 이경록 박석수, 원희석)의 죽음이 떠오른다. 생은 죽음 앞에 자유롭지 못하고 염라대왕은 순번 없이 생을 데리고 간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부활이라고도 하고, 영혼불멸이라고도 한다. 또한, 죽음은 문학의 주제로서 모든 문학인의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라고 규정하고 싶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죽음이다. 젊은 천재시인 한 사람이 또 세상을 떴다. 염라대왕도 무심하시지, 순서대로 데리고 가면 어디가 아프냐? 그도 시대에 따라 눈치 살피며 데려가는데 서열을 파괴하다니 너무하시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상념에 여기서 멈칫한다. 기형도는 서른을 채 못 채우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시단에서 활동한, 시간상으로는 4년이 조금 넘고, 양적으로는 시집 한 권 분량의 삶 속에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그의 시가 죽음을 보여주었다면 그 죽음, 시인의 삶과 죽음은 자율적인 어떤 가상적 구성물 속의 죽음이라는 텍스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90년대의 기형도가 아니라 2000년대의 기형도의 시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기형도의 전기적 그림자를 그의 시에서 벗겨 내 그의 실제 죽음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인의 죽음에 대한 가상적인 텍스트에 죽음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기형도 시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이젠 죽음에 대해서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하게 끄집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까지 금기시되었던 죽음 말이다. 나도 죽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죽어보았기 때문이다. 기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죽음이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그 찰나의 기분은 같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간 큰 남자가 있으니 신기하다. 그 남자가 바로 김승진 시인이다.

시인은 전북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 357번지에서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8남매(4남4여)로 태어났다. 어릴 적엔 동네, 학교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으며,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내고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졸업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이 형성되었다. 전후방 각지에서 전차소대장, 대대참모, 중대장, 연대장, 여단장을 걸쳐 2008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참 군인이었다.

30여 년 군대생활은 김 시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가 현역근무 중(2006년) 말기 암 환자로 판명 받아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이렇게 죽음 앞에 초연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자신만의 행복일 것이다. 시인은 지난 3월 얼마 살 수 없다는 병원의 의학적 사망통보를 받고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시 쓰기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문학저널 신인문학상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면서 시인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언제 올지 몰라도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인의 영혼이 담긴 『새벽항구』가 하느님과 가족, 군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대상에 빛과 소금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제부터는 시인의 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시인의 시집을 접하면서 왜? 시집 제목을 『새벽항구』라 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시에서는 제목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 쓰는 사람은 안다. 지금은 그 궁금증이 말끔히 풀렸다.

시인의 고향이 바로 서포(西浦)다. 서 자가 서녘(西)이었으나, 해가 지는 서쪽이 아닌 새벽 서(曙)자를 써 서포(曙浦: 새벽항구)로 정했다. 새벽항구는 해가 지는 항구가 아니라 희망과 사랑이 듬뿍 넘치는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새벽항구에서 서포(曙浦)의 맑은 영혼이 영원히 숨쉬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나는 시인이지만, 아직 시 맛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시 맛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의 시를 대하면서 가슴 한쪽에 다가오는 것은 해맑은 동심 같은 시심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순수한 시어를 낚았는지 시인의 심상을 가름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시가 아름답다고 할 때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구체적 실상은 미사여구로 짜인 언어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은 편견과 선입견은 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협소하게 만든다. 어떤 시에 대해서 주제를 간파하고 해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차적인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뛰어넘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름에도, 가장 잘못된 편견은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짜인 시를 아름답게 보는 데 있다.

시인이 시어를 선택하는 것 또한 갈등과 고민 속에서 심사숙고하는 창조 작업이다. 포괄적인 광범위한 수많은 것 중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현미경으로 확인하여 뽑아낸 선택이 렌즈에 담는 것이 시어다. 이것은 광활한 의미에서 아름다움이다. 또한, 시의 아름다움은 말의 아름다움이 아닌 문자의 세밀한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인생의 압축이 시라고 표현한다면 여러 시어에는 서정적인 시어도 있겠고, 울분을 토해내는 저항 시어도 있겠고, 불콰한 풍자 시어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시에서 아름다움이란 흥분, 도치, 매혹적인 힘이 솟아나는 긴장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란 과연 무엇인가? 라고 다시 한 번 되묻는다면 대다수가 함축된 언어라고 대답한다. 이 답은 시에 대한 부족하지만, 핵심에 가까운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시적 언어는 산문처럼 풀어진 말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말을 풀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고 이것은 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를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논리를 거두절미한 채 자신의 감정을 발설하는 것." "시는 한방의 다른 사람과 자신에 언어적 고백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시인들은 골머리 아픈 시를 왜 쓰고 있는가? 시인만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시인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죽음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예술의 구도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고백하기에 앞서 자기의 절박한 고백이 과연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지 불안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내면을 실감이 나게 전달할 수 없는 경우, 고백의 욕구는 침묵으로 돌아가거나 발설하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질화할 수 없는, 즉 감각에 직접 호소할 수 없는 내면을 드러내고자 할 때 고백을 하기도 어렵듯이 고백은 듣기도 어렵다. 즉 시는 남의 고백을 귀담아듣는 것이다.

모든 고백은 비물질적인 세계,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시도되는 소통이기 때문에 질량도 부피도 색깔도 형체도 없는 내면을 교환하는 일이야말로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다. 시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내적 고백의 양식이다. 물론 모든 시가 개인의 내적 고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여시나 민중시처럼 주관적 내면이 아니라 객관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우선시하는 시도 있다. 그럼에도, 내적 고백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똘똘 뭉친 내적 고백을 해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속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 중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화자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다.

시속에서 화자의 나이, 성별, 감정상태(슬픔, 분노, 환희 등등)를 파악하는 것이 시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관건이다. 난해하고 어려운 시가 나쁜 시는 아니다. 반대로 아름다운 시어로 구성된 쉬운 시가 좋은 시도 결코 아니다. 시인이라면 독자입장에서 시의 주제나 해석에 급급하지 말고 시 속에서 제대로 된 시 맛을 씹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시 한 편 감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눈으로 화자를 바라볼 것인가?

시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제목은 시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주제나 해석에만 급급하다 보면 화자가 이야기하는 깊은 시 맛을 모른다. 시는 소설이나 수필처럼 해석이 아니라, 숨은 수수께끼를 찾는 것이다.


늦잠을 잔 아침
괜스레 미안한 마음 숨기려
식탁의 아내와 아이들을 피해
창문 밖을 보니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
신선한 공기에 심호흡하고
잠시 옛 생각에 잠긴다.
숨 쉬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제는 이미 과거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현재를 아끼고 사랑하리라.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열심히 탐사하던 나는
부엌에 들어가
아침에 먹은 그릇을 씻어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아내표정을 떠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어 본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현재의 내 모습과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사랑하리.

- <소중한 하루> 전문

시인이 바라보는 하루는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하루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인에게 하루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하루를 문지방에 동여매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다. 이 시속에 시인의 동심 같은 심상이 물씬 배어 나온다. 한 인간의 고뇌가 응축된 인간의 아름다움이 수줍게 나타나는 것이다.

간밤에 경련과 고통 때문에 잠을 설쳐 늦잠을 자다 보니 가족과 함께 식사를 못했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하는 가족을 보니 괜히 미안해서 슬그머니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 밖으로 과거의 자신의 영상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여기 재미있는 시어는「아내의 표정을 떠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어 본다.」라는 표현이다. 시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탐사하던 나는」이라고 표현했다. 탐사는 그냥 싫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아픈 가운데 아내에게 미안함을 생각할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은 해맑은 동심이다.

오늘은 어쩌면 어제 내일까지도 포용하는 가장 사랑해야만 할 대상이라 여긴다. 이처럼 김 시인은 죽음의 은유에서 삶의 은유를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에서 녹녹하지 않은 긴장감이 있다.

조그마한 곽을 열면
찬란하게 빛나는
손에 잡히는 휘장 하나,
반평생 몸 바쳐 희생한 나에게
조국이 준 값진 선물
보국훈장 삼일장!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고
내 청춘과 삶을
가름할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훈장
꿈을 펼쳐보지 못한아비의 가슴속 애절함
공과 명예가 퇴색되지 않도록
기갑장교의 길을 걸은
아들에게 잘 보관 할 것을 당부한다.

보국 훈장을 받은 당신은
조국이 부여한 영원한 국가 유공자.

- <보국훈장> 전문

보국훈장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값진 훈장이기에 대단한 것이다. 이 훈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되며, 보국훈장 통일장·보국훈장 국선장·보국훈장 천수장·보국훈장 삼일장·보국훈장 광복장 등 5개 등급이 있다.

30여 년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바친 시인을 배려한 당연한 보상이다. 시인은 제2부 《탱크 타는 영원한 사나이》 편에서 참군인 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독백으로 압축한 시어에서 강직하고 늠름한 군인의 모습이 그대로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로서 온갖 노력을 하였다. 당신 말대로 당신은 조국이 부여한 영원한 국가 유공자로서 자긍심을 잃지 말지어다.

“내가 죽으면 수의는 내 삶의 전부였던 군복을 입혀주시오.” 유언하는 시인의 한마디에 가슴이 찡하다. 그는 2009년 수의 대신 군복을 입고 대전 현충원에 영원히 잠들었다.『문학저널』 발행인 김창동 소설가는 여미는 글에서 “김승진 시인의 시는 애잔한 비애가 소리 없는 흐느낌처럼 흐르고 삶이란 거대한 대상에서 한발 비켜선 채 세상의 모든 증오와 이기를 다 버리고 다감한 정서로 대화를 나누려 하고 있다. 그처럼 맑은 영혼과 심성은 이제 그의 좋은 시적 토양이 되어 아름다운 시로 꽃피게 될 것이 자명하다.”

동료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김 시인에게 무엇 하나 도와줄 것이 없어 정말 미안하다. 그대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멋진 시인이다. 죽음까지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초월적인 생명의 원초는 영원히 빛날 것이다. 죽음을 저주한다거나 부정하는 비관적인 자살 같은 죽음이 시집 안에 없다. 오르지 생명으로 채어놓은 시들 뿐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들인가, ‘시가 좋다 나쁘다’를 초월하여, 시인의 동심 같은 해맑은 영혼이 새벽항구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시인의 「이별離別 준비」라는 시를 시인 허락 없이 삭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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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 시인·수필가 국제펜클럽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주)엠제이엠 대표이사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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