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와 함께 아파트주변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반쯤 걸었다. 걸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 군락과 하천변 산책로이다. 민락동에서 시작해서 낙양동에 이르는 ‘민락2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알리는 가림막이 기다랗게 늘어 서 있다. 롯데마트 앞 송산로 일대의 경전철 공사는 마지막 마무리 중이다. 한때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타당성 검토 등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현재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부용천변에서 중랑천변으로 연결한 자전거전용도로와 산책로는 산뜻하게 완공되었다. 요즈음 늦은 시각에 이 길을 걷다 보면 기분이 상쾌하다.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 활기가 넘친다. 의정부는 최근 경기도 내에서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 중 한 곳이다. 70년대 말 의정부를 생각하면 빛바랜 추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당시 나는 모 방공포대대 ‘오리콘’포대 창설요원으로 이곳에 전출 와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내 발걸음은 어느새 천보산(天寶山)과 축석고개, 의정부 역전 등 시내 뒷골목과 군부대 근처를 두리번거려보기도 한다. 중앙로 어느 골목에 돼지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대폿집이 있었다. 아담한 화덕에서 매캐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참나무 숯불이 붉은 혀를 널름거리면 양념에 잘 버무려진 돼지갈비가 석쇠 위에 척! 하고 드러눕는다. 그럴 때마다 내 목구멍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꼴깍~하고 혓바닥을 후려친다. 입담 좋은 대폿집 아낙네는 동생 같은 군인들이 또 찾아왔다며 신이나 진한 입담에 우리는 한바탕 배꼽이 빠져나오곤 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해 겨울밤, 음악다방 한구석에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즐기면서 예쁜 다방 아가씨의 미끈한 종아리를 훔쳐보는 눈요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외출 때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다방이었다. 커피 맛도 잘 모르면서 그냥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음악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낭만이 있었고 추억이 있던 의정부는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져 좀 낯설기까지 하다.
과거 의정부하면 떠올리는 것이 군사도시, 미군부대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가 점점 사라져가고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살기 좋은 도시, 문화의 도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반향이다. 의정부로 이사 와 팔 년여를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아직껏 해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지금 사는 곳이 어디냐?”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말해주곤 한다. “인구 분산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팔년 전 여기로 이사와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래요? 하하하!” 맞장구치며 그냥 웃곤 한다.
경기도는 면적, 산업분포도, 인구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은 대단하다. 그만큼 경기도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휴전선과 접하고 있어 국가안보는 물론, 국가기간산업 등 녹색산업과 교통 요충지로서 그 역할이 더욱더 막중하다.
이곳 의정부는 나와 질긴 인연을 맺고 있다. 이곳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다 보면 집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43번국도 변에 부대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육군 제0000부대’는 내 주민등록번호숫자처럼 머릿속에 이미 입력된 숫자이다. 숫자 안에는 옛 전우들이 보이고, 정겹던 추억이 떠오른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혹독한 추위 속에서 BMNT(해상박명초)와 EMNT(해상박명종) 때에 저공으로 침투하는 적기 격추훈련을 하던 추억을 떠올리면 긴장이 되곤 한다. “1시 방향 적기 출현!” “사격!” 오리콘 쌍포에서 하늘을 보고 불을 품었다.
“격추!” 우리는 매일 가상훈련을 철저히 하며 유사시에 대비했다. 서해 바닷가에서 대공포사격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부대로 복귀하던 그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보자기에 사랑을 가득 담아 축석고개로 나를 면회 왔던 어여쁜 서울 아가씨를 평생 반려자로 맺어준 추억은 오리콘 레이더 기억장치처럼 남아 있다.
나와는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의정부는 우연치고는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이곳이 좋다. 세상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항상 흐르는 물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해서 좋다. 아파트 창문을 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부용산(芙蓉山)은 온통 푸르다. 수락산(水落山) 계곡물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낭만이 있는 이곳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꿈을 지닌 이웃들이 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어야 한다. 필연은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만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