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철쭉이 있다. 철쭉이라는 이름은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의 ‘척촉(擲燭)’이라는 중국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개인적으로 꽃도 꽃이지만 꽃보다도 오히려 이 철쭉이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철쭉꽃이 피어 있는 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철쭉꽃을 보고 있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미소 짓기도 한다.
철쭉에 얽힌 전설로 수로부인의 일화가 유명한데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순정공을 따라 그 임소로 동행하던 수로부인은 그 인물이 절세가인 인데다가 꽃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들 일행이 바닷가에서 쉬게 되었을 때 그 주위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려 있었다. 마침 철쭉꽃이 몇 길이나 되는 절벽위에 한창 피어 있는 것을 본 수로부인은 시종들을 보고 누가 저 꽃을 꺾어 올 자가 없느냐고 하니 아무도 하겠다는 이가 없었다.
때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검붉은 바위 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며 그 꽃을 꺾어다 부인에게 바쳤다고 하니 이것이 그 유명한 헌화가이다.
촌로(村老)가 직접 그렇게 헌화가를 부르며 꽃을 바쳤을까마는 모두가 위험하다며 몸을 사릴 때 위험을 무릅쓰고 요즘말로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꺾어 드리겠다고 하니 비록 볼품없는 일개 촌로이지만 그 모습이 모두에게 참으로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감동모드가 펼쳐졌다고나 할까?
감동이라는 것은 한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과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좀 다른 듯하다. 만약 촌노가 아닌 백마를 탄 왕자가 수로 부인에게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마 수로부인의 감동은 더 컸겠지만 아마 감동보다는 설렘 내지는 주변 사람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 지금의 헌화가에 얽힌 전설처럼 두고 두고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감동은 없을 것 같다.
촌로이기에 가능한 감동 같은 것이 이 철쭉에게도 느껴진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라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가주…”라는 동요도 있지만 진달래와 철쭉은 뛰어난 용모와 자태를 뽐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보내고 무엇보다 먼저 봄과 들에 봄을 전해주려는 정성과 노력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가 가시는 길에 뿌리겠다는 소월의 마음도 님을 향한 사랑과 정성만큼은 잊지 말라는 마지막 절규와도 같은 그 정성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감동은 이렇듯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올까지 모든 정성을 쏟았을 때 전달되는 기운이며 그 기운은 시공의 장벽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리고 그것은 특정인만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에 참으로 감사하고 아름답다.
도량에 가득한 철쭉을 바라보니 그 정성과 아름다움에 고마움의 눈물 한 방울 찔끔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