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점(盲點)이나 사각지대(死角地帶)라는 말은 다르면서도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물체를 확인하지 못해 종종 충돌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사이드미러(side mirror)로 사물을 확인할 수 없는 각도(角度)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할 때에는 차에 달린 거울로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처럼 어느 위치에서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를 ‘사각지대’라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관심(關心)이나 영향(影響)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比喩)해서 그리 말하기도 한다.
인체의 안구(眼球)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망막(網膜)의 희고 둥근 부분은 시세포(視細胞)가 없어서 빛이나 색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 부분을 가리켜 ‘맹점’이라 부르는 것이다. 맹점은 일상에서 주의(注意)가 미치지 못하여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점을 비유해서 그리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치밀(緻密)한 계획이라도 맹점은 있게 마련이고 사각지대 또한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勘案)하여 매사에 모순(矛盾)된 점이나 틈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차를 몰 때 사이드미러만 바라보고 운전하다 보면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차를 못 보는 수가 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사각지대를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사각지대를 살피지 않고 운전하면 누구나 큰 사고를 당하게 마련이다. 운전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타인을 배려(配慮)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국정을 살핀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예산심의 때 국회에서 항목 자체를 누락(漏落0시켜 큰 파문이 일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상대방은 배려치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적 성향((selective tendency)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자기중심적 성향(自己中心的性向)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성향에 함몰(陷沒)되면 있어도 보이지 않고 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는다. 선택적으로 듣고(selective listening) 선택적으로 보기(selective seeing)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객관적(客觀的)으로 사물을 살피고 관조(觀照)해야 한다. 몸에 배이도록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각지대이고 맹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여자(參與者)의 입장이 아니라 관찰자(觀察者)의 입장에서 보면 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라는 것이고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떠나서 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신도 한번 신어보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관여(關與)하되 간섭(干涉)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원(支援)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당위성(當爲性)을 가지고 보라는 것이고 효율성(效率性)을 가지고 보라는 것이다.
작은 원인 무시하면 큰 사고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일전에 발생했던 KTX 고속열차 탈선사고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작은 너트(nut) 하나가 원인이었다. 너트 하나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서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별거 아니라고 그냥 지나치는 작은 일이 바로 사각지대로 나타나는 것이고 맹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늘을 나르는 점보제트기도 작은 새 한 마리 때문에 추락할 수도 있고 무심코 사용하는 휴대폰 하나 때문에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찌해야 하는가? 항상 사각지대를 살피고 맹점을 찾아 미리미리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기차 떠난 뒤에 손 들어봐야 소용없지 않은가.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