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世上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일까? 답도 없는 어리석은 질문인지 몰라도 살아가는 目的과 方法에 따라 家庭中心의 生活, 명예를 얻기 위한 삶,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살고 싶은 公人의 삶,이 社會에 대한 봉사의 삶 등 여러 가지로 각자 뜻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고 살아간다.
그 삶속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禮를 중시하고 信과 義를 根本으로 가지고 살아온 民族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時代의 흐름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몇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情神이 붕괴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앞서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우리라는 共同體의식은 점점 작아지고 나라는 個人위주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그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부,권력,명예를 잡기 위해 努力하는 것 같다.
프랑스 격언에 Alls Fair is Love and War라고 사랑과 전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과정속의 근본은 신의가 함께 해야만 정통성이 부여된다고 生覺한다.
만약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면 역사에서 보듯이 時代가 지나고 나면 재평가가 이루어져 모든 것들이 존중 받을 수 없고 인정 받을 수 없고 명예를 얻지 못함보다 못한 삶이 되고 만다. 또한 그 결과는 편법과 불신을 조장하고 이 社會를 病들게하고 황폐화 시킴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없다. 논어에 君子는 義로써 설명하면 금방 알아듣고 小人은 이익으로 설명하면 빨리 알아듣는다라고 했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요즈음의 사회풍조를 보면 후자의 말씀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 같아 마음이 서글퍼진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바닥이 보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하였다. 하지만 이 世上에 더 必要한 것은 큰 의리를 지키기 위해 父母兄弟의 情도 돌보지 않은 것(大義滅親:춘추)과 융통성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키는(尾生之信) 어찌보면 우직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옛 성현의 말씀이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을 시대인지도 모른다.
오늘 따라 산기슭의 푸르른 노송이 아름다워 보이고 옛 선비정신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 자신의 공허함 때문일까?
이중효 포천시의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