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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카이스트 사태와 ‘나가수’ 논란

- 다시 우리 사회의 경쟁을 생각한다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4월 26일
↑↑ 김성렬 대진대 중앙도서관장, 본지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몇주 전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을 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분위기도 이제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하다. 김건모가 출연가수들 중 꼴찌를 하자 김건모는 예외로 쳐서 예선 탈락을 번복하자고 했던 ‘나는 가수다’ 사태도 마찬가지 사정인 듯하다. 얼핏 보기에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사태는 그러나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를 반성케 한다.

먼저 두 사건은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경쟁이라는 화두에 꼼짝없이 매어있음을 증거한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영재들이 꽃다운 목숨들을 버린 이유는 경쟁에서 탈락하자, 혹은 탈락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경우이다.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으니 그들이 경쟁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나가수’의 경우는 상당한 경력을 가진 기성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최고의 가창력을 선보이지만 차례차례 탈락시켜 나가는 방식 때문에 가수들 본인도 상당한 긴장을 하는 것으로 보였고 시청자들도 흥미진진하게 지켜 본 프로그램이었다. 가수 경력에 관계없이 순전한 가창력으로 출연자들을 경쟁시키는 방식인 점에서 출연하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간에 흥분과 긴장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 최대의 키워드인 것은 비단 이들 사태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자신이 늘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대학 졸업생들도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최대 몇 천만 원의 몸값 차이는 감수해야 하고 40대 중반이 되면 몇 십억의 연봉을 받는 유명 대기업의 CEO와 몇천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서민들 간의 격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수십억 연봉을 주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도 국내에서 벗어나면 먹느냐 먹히느냐의 피나는 경쟁에 휘말린다는 것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경쟁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사는 우리들이니 만치 TV에서 방영되는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 같은 프로그램들도 하나의 간식거리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세태가 되어있다.

그러나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선배는 무조건 섬겨야 한다는 자기들끼리의 서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나는 선배다’로 개명해야 할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나 가수’사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상의 화두가 되어있는 ‘경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한다. 우선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경쟁 제일주의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에서도 경쟁만이 최우선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국비로 장학금을 받는 대신 세계적 인재가 되어야 할 의무를 지닌 학생들인 만큼 상응하는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도 일리가 있고 그 경쟁을 도입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말처럼 무조건 전액 장학금을 주니 졸업을 무작정 지연시키는 학생들 때문에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발언도 일정 정도의 설득력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하기 전까지 저마다 최고의 수재였던 학생들을 아무런 대비 없이 무조건 경쟁 우선주의로 몰아쳐야 했는가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카이스트 사태를 두고 한쪽에서는 인내심 없는 요즘 젊은이들을 탓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어떠한 공부라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반론이 맞서지만 나는 학생들이 왜 죽을 둥 살 둥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기들의 주관을 확립토록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용어가 그야말로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카이스트의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개념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듯하다. 우수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경쟁을 붙여 놓으면 더 우수한 인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기계적 경쟁 우선주의만 작동된 듯이 보이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인만치 문학, 음악,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적 소양으로 충분히 그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주었더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을 전 강좌 영어강의에 내몰고 학점이 떨어지면 학점 당 얼마씩 수업료를 지불케 하는 방식으로 모멸감을 안겨 주는 경쟁방식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야수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요컨대 카이스트는 경쟁의 기계를 만들려 할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성을 지닌 과학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지금이라도 진로를 재설정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경쟁에서 떨어진 선배를 구해 주자고 출연진이나 피디, 진행자들이 모두 법석을 떨었던 ‘나가수’는 그러면 오히려 온정이 살아있는 경쟁판을 보여준 사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또한 일그러진 한국식 경쟁의 한 마당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 판의 우스갯거리였다. 그렇다는 것은 엄연히 만들어 놓은 규정을 특정인을 위해 마음대로 농단하는 한국식 온정주의 또는 정실주의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쿨’하다는 말이 유행이지만 이번 사태로 보면 쿨하다는 말은 연인들끼리의 애정 싸움에서 자존심을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이 상처받기 전에 먼저 ‘굿바이’하는 자기 구제 방식―나르시시즘의 한 표현으로 등장한 말인 듯 보인다. 요컨대 한국 사회에서 쿨 함은 아직 통용되지 않고 있는 미덕인 것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따뜻한 인문학적 소양을 카이스트의 학생들에게 심어주었어야 했다는 앞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게임의 룰에 맞게 우리는 경쟁해야 하고 승자는 존중받되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도 따뜻이 맞아주며 진 사람도 인제든지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진다면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훼손하지 않는 경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 독식이 아니라 2등 3등을 한 사람도 얼마든지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더할 수 있으면 우리 사회의 경쟁은 그야말로 쿨해 질 터이다.

길게 논할 필요 없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없는 요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게임의 룰에 입각한 경쟁을 하고 패자도 한 판의 패배로 좌초하지 않는 따뜻한 배려가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김성렬 / 대진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문학평론가 겸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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