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은 2555년 전 북인도의 카필라국에서 싯타르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셨던 실존 인물이다. 석가모니라는 말은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싯타르타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불교라고 일컫는 가르침을 주신 역사적인 인물로서 이 위대한 스승이 실존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들에 의해 충분히 증명된다.
첫째, 부처님을 직접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이 증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돌 비명, 돌 기둥, 탑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념비는 부처님 시대 전후에 살았던 왕들이나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둘째, 불경에 언급된 건물의 옛터가 발견되었다.
셋째, 부처님이 세우신 승가(교단)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왔다.
넷째,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바로 그 해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결집(편찬)하는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에서 확인된 가르침은 부처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다섯째,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그분의 몸은 화장되었는데 그분의 사리는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나누어 가졌으며 각 나라의 왕들은 사리를 모시기 위해 탑을 세웠다. 지금도 탑에 모셔졌던 사리가 남아 있다.
여섯째, 가장 우수하고 믿을 수 있는 고대 인도 역사책으로 알려진 '마하방사'에는 불경에 언급된 여러 왕들과 불교를 받들었던 아소카왕의 전기, 그리고 부처님의 전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일곱째, 부처님이 세상에 계셨던 45년간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록한 경전은 부처님이 실제로 이 세상에 사셨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경전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승가에 의해 면면히 전승되어 왔고 5백년 뒤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하기 80년 전의 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절대 과제를 풀기위해 태자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깨달음을 찾아 고행의 길로 들어선다. 이것이 출가의 동기이다.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며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것인지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를 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결국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하여 궁극의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단순한 철학적 가르침을 뛰어넘어 모든 깨우침의 끝이자 가르침의 끝이라고 하는 종교(宗敎)가 된다. 종교라는 말은 마루 종(宗), 가르칠 교(敎)의 합성어로 중국 양나라 때의 천태 지의라는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처음으로 쓴 말이다.
천태 지의라는 사람의 개인 소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한 사람의 뼛가루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주변 8개국이 전쟁직전까지 갔었다는 것, 결국 전쟁은 안 벌어졌지만 그 유골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가서 지금까지 그 나라 최고의 보물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상식 밖의 일이다. 인류 역사상 그 누가 있어 이러한 일들이 가능할까?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는 더 이상의 걸출한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만 해도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릴 정도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었고 그러한 그들의 철학을 기반으로 더욱 많은 사상가들이 배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단순한 철학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숙원인 생로병사를 해탈하는 경지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 싯타르타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한 존재이며 그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하여 그분의 가르침과 위대함에 다시 한번 오체를 투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