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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의 문화에세이] 한국의 대학개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1년 04월 19일
↑↑ 박정근 대진대 교수, 본지 칼럼위원장
ⓒ (주)포천신문사

지난 주 대학의 이슈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꽃다운 나이에 4명의 영재가 목숨을 스스로 끊었고, 마침 그들을 가르치는 스타 교수도 그 뒤를 따라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그 장본인들이 한국의 수재들이 모여서 한국첨단의 과학을 이끌어간다는 KAIST에서 벌어졌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마치 한국 엘리트들의 정신적 결점이 노출되고 그 동안의 대학개혁이 부정적으로 평가될까 염려하여 정부와 국회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중심에 국제경쟁력에서 뒤떨어진 한국의 대학교육을 개혁하는데 앞장 서왔던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이 서있기에 더 아이러닉하였다.

서남표 총장은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일단 들어오면 놀고나가는 한국대학의 분위기에 일침을 가한 한국대학 개혁의 선구자로 인식되어 있다. 그가 이미 이룩한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강하게 개혁안을 추진한 덕분에 카이스트는 일약 세계의 유수한 대학과 어깨를 겨루는 한국의 MIT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학의 영웅이 마치 죄인들처럼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한국의 대학개혁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서 총장은 카이스트에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던 관행을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도록 개혁하였다. 차등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소위 ‘장짤’이라는 코믹한 닉네임을 얻었는데, 그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일종의 루저(패배자)로 낙인이 찍히게 하여 그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제도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게 하여 연구에 더 정진하려는 본래의 목적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미래가 최고의 엘리트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으니 그 뜻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쟁주의와 성과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금과옥조는 아니다. 세계의 시장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약자와 강자가 서로 경쟁하여 강자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강자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에서는 강자에 대한 격려를 통해서 최고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경쟁에서 탈락한 약자나 패배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강자나 엘리트에 대한 예우는 다수의 약자를 보호하고 공존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는 결코 소수의 강자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의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아닌가.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이란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음도 불구하고 카이스트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서 총장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은 그의 큰 업적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개혁안이 다소 비교육적이거나 비인간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전인교육에 필요한 교양과목이나 인문학 같은 과목을 모두 영어로 강의를 듣게 한다든지, 일시적 성적하락으로 등록금을 차별적으로 내게 하여 심한 좌절감이나 열등감을 조장하는 것은 엘리트 학생들을 자칫 영원한 패배주의자로 낙인을 찍게 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을 포함하여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극심한 경쟁 속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극단적인 경쟁을 하면서도 사상 유래 없는 실업률로 고등 실업자로 내몰리고 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서 청운의 꿈을 키우기 위해 밤을 세워 공부하는 것은 옛날부터 ‘형설의 공’이라고 칭송하여 온 미덕이다.

그러나 청춘을 지닌 대학생들이 어찌 교실과 연구실에서만 갇혀 살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의 가슴 속에 낭만의 꿈에 살고 싶은 아름다운 정서가 숨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키이츠는 이런 젊은이들의 마음을 “오래 도시에 갇혔던 사람에겐”이란 시로 그려내고 있다. 젊은이들의 행복은 결코 성공만으로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오래 도시에 갇혔던 사람에겐,
하늘의 아름답고 맑은 얼굴을 보는 것,
파란 하늘의 미소를 가득히 받으며,
기도를 올림은 매우 즐겁다.
마음 흡족히, 피로에 젖은 몸을
어느 물결치는 즐거운 둥지에 묻고
사랑과 우수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읽을 때, 누가 이보다 더 행복하랴?


박정근 / 대진대 교수, 본지 칼럼위원장, 이해조문학회 회장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1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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