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인자(因子)와 요인(要因)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유전인자(遺傳因子)가 어떻고, 그 사고의 발생요인(發生要因)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말들을 한다. 그러면서도 인자와 요인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을 못한다. 유전인자에서 보듯이 DNA가 되는 인자는 어떤 사물의 속성(屬性)을 말하는 것이고 발생요인에서 보듯이 요인은 그 인자의 쓰임[用度]을 말하는 것이다. 프라이머리 홱터(primary factor)를 말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주체(主體)를 말하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실체는 그 실체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속성이 있다. DNA가 있다. 그 속성을 다른 이름으로 인자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속성을 지닌 인자가 다른 속성을 지닌 인자와 어울려 어떤 현상을 나타낼 때 그것이 요인[primary factor]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자와 인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를 지향(指向)할 때 그것을 가리켜 발생요인이라 하는 것이다. 상대(相對)를 이루는 그 인자 하나하나가 발생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자와 요인은 공동운명체(共同運命體)다. 같이 가야 하는 숙명(宿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자가 요인으로 작용해야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씨앗이 밭에 떨어지지 않고 씨앗으로만 존재하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인자도 마찬가지다. 인자가 인자로서만 존재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씨앗이 밭에 떨어져 새로운 싹을 틔우듯이 인자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 무언가를 싹틔우는 요인으로 작용해야 그 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용어에 심즉운(心卽運)이요 운즉심(運卽心)이란 말이 있다. 심과 운은 같이 간다는 말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운이 바뀐다는 말이다. 또 운이 바뀌면 마음도 따라 바뀐다는 말이다. 운이 바뀔 때가 되면 마음 또한 바뀌어 그러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과 운은 같이 가는 것이다. 인자와 요인도 마찬가지다. 인자가 요인을 규정하고 요인이 인자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요인 속에 이미 인자를 내포(內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자와 요인은 날실과 씨실 같은 것이다. 천을 짤 때 쓰이는 날실과 씨실 같은 것이다. 천은 날실과 씨실이 서로 얽혀 짜이는데 날실은 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고 씨실은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다. 천을 짜려면 먼저 직기(織機)에 기준이 되는 날실을 잘 배열해야 하고 날실의 틈으로 씨실을 담은 북을 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경위(經緯)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날실[經]과 씨실[緯]이 서로 어울려 천을 짠다고 해서 그리 부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날실과 씨실이 서로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천을 짠다는 데서 어떤 일이 되어 온 내력이나 사건의 전말을 그리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경위(經緯)가 있기 마련이다. 날실과 씨실 어느 하나만을 갖고는 옷감을 완성할 수 없듯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날실이 되는 인자(因子)와 씨실이 되는 요인(要因)이 서로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전말(事件顚末)을 이야기 할 때 경위를 따져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경위를 따져보면 알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경위를 따져보기 전에는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위란 인과(因果)의 과정(process)을 말하는 것이다. 전말(顚末)을 말하는 것이다. 인과란 코즈 앤 이홱트(cause and effect)를 말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원인이란 바로 인자를 말하는 것이고 요인을 말하는 것이다. 인자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것이 결과란 말이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인자와 요인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코즈앤이홱트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