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로 들려오는 정답고 낭랑한 목소리. 어제 한 말을 잊지 않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잠깐 해가 비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 주셨다. 고모리 보문사 근처 어느 무덤가에서 며칠 전 산책길에 할미꽃을 보고 내 생각이 나더라고. 날 좋으면 같이 가보자고 하셨던…. 햇님이 자꾸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나보다 더 걱정을 하신다.
보문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꽃을 찾아가는 길에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 같이 발걸음도 가볍게 사뿐사뿐 걸어가는 뒷모습이 죄송스럽지만 참 귀엽기도 하단 생각에 혼자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다.
인적 없는 산길에 기분 좋은 솔향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고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마른 잔디 틈, 눈에 잘 띄지도 않게 하얀 솜털로 몸을 감싸고 얌전하게 고개 숙여 우리를 맞아준다. 그냥 지나쳐 버렸을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너를 찾아내고 나를 기억해 주어 우리에게 인연을 맺게 해준 분께 우린 함께 감사의 마음을 갖기로 했다.
할미꽃은 수수한 처음 이미지와는 다르게 붉은 꽃잎 속에 꽉 들어찬 황금 알맹이들로 어느 꽃보다 더 화려했다. 젊은 날의 정열을 처연한 화려함으로 간직한 채 몇 해를 피고 지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