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54주년이 되는 해이다. 54년이 지났건만 이 날을 맞으면 필자는 암울했던 그 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그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어느 해보다 가뭄이 심하였던지 필자는 어머님과 함께 조그만 다랑치 논에 물을 퍼서 늦은 모를 내고 있었다. 멀리서 은은히 들리기 시작한 포성이 오후가 되자 점점 가까이 들리는 듯 싶더니 삽시간에 피난 행렬이 줄지어 몰려오면서 북괴군의 기습 남침으로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말로만 듣던 난리라 필자는 난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그저 무섭기만 했다. 고막이 터질 듯 작열하는 적의 포화 소리와 지축을 흔드는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달려오는 커다란 괴물(탱크) 앞에 우리는 처절한 공포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 무덥고 긴 여름, 의용군에게 붙잡혀 북으로 간 채 소식이 없는 이웃집의 형님 아저씨들은 여지껏 생사조차 모르고, 퇴각하던 공산군에 의해 학살된 집안의 어른들은 또 얼마인가? 무력 적화통일의 야욕을 이루고자 조용한 새벽에 도발을 감행해 놓고는 적반하장 격으로 남한이 북침을 하였다고 역설을 늘어놓는 간교함과 무자비한 살상을 서슴치 않고 저지른 저들의 악랄함을 생각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율을 금치 못한다.
광기로 뭉쳐진 한 집단의 어처구니없는 도발이 수 백만 명의 인명과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로 아름다운 우리의 금수강산을 초토화 시켰는가하면, 일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재회를 애타게 염원하다 응어리진 한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며칠 전 TV뉴스에서 남북이 서로 비방 방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가 돼 확성기를 떼어 내는 장면을 보며 반가운 마음보다는 씁쓸한 생각이 앞서는 것은 웬일일까?이러한 화해의 무드가 얼마나 지속되려나, 과연 저들을 신뢰해도 될까? 그런 생각은 비록 필자만이 아닌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의 공통된 우려일 것이다.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뒤로는 땅굴을 파내려 온 저들이 아닌가? 1.21 사건을 비롯하여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아웅산 폭파 사건 등 온갖 천인공노할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질러 온 그들이 아닌가? 경제협력을 비롯 민간 교류 등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주변의 불안정한 요인이 아직 상존하고 있기에 확신을 갖기에는 어딘가 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만은 하고 믿고 싶어지는 마음은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재발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자유 평화를 열망하는 바램 때문이리라.
몇 해전 메스컴의 공개토론에서 한 20대 토론자가 "한반도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라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안보인식의 현주소임을 절감했다.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의 중요성을 제대로 심어 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써 자책과 울분으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전 한 판사가 특정 종교신자의 종교적 양심의 자유에 의한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우리사회에서는 찬반 논의가 분분했다. 각각의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논리와 이유가 있겠으나 필자는 이번 판결에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필자가 판사의 판결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는 것은 우매한 일인 줄 알지만 그러나 우리의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와 함께 ‘국방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수많은 외침을 이겨냈던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들을 상기해 보거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인류사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국방은 우리가 지향하고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할 자유 민주주의 사회 구현을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양심의 자유"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덕목임에는 틀림없다. 이를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과연 국방의 의무를 앞지를 수 있겠는가?국가가 있어야 인권을 논의 할 수 있고 진정한 자유도 향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의 포화 속에서 내 생명이 위태롭고 저돌적인 탱크 앞에서 국가의 안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다면 그래도 양심의 자유 때문에 스스로 나의 생명과 내 나라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1천 5백년 전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화랑도의 5계 중에는 살생유택(殺生有擇)과 함께 임전무퇴(臨戰無退)라는 계율이 있다.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는 것이 세속의 선계(善戒)라고 갈파한 원광법사는 선과 악을 구별하여 선을 택하는 “도덕적 판단”이“양심”이라는 것과 국가와 사회가 안전하게 보위될 때에만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가르침을 지금의 우리에게 이미 오래 전에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군대를 보유하여 자주국방을 굳건히 하고자 함은 전쟁을 야기하여 외국을 침략하기 위한 약탈의 수단이 아닌 적의 침공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보위하기 위한 자위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우리 민족은 이미 경험하였고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국방의 의무는 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우리사회와 국가의 존속을 위한 신성한 의무인 것이다. 155마일의 휴전선을 눈앞에 둔 우리의 안보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군대와 무기가 없는 국방이 있을 수 있겠는가?아담스미스의 "강병(强兵)은 부국(富國)에 우선한다"는 말도 외침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을 강조한 말이리라.
6.25 54주년과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며 거룩한 희생과 엄청난 피의 대가로 얻어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더욱 공고히 수호하기 위하여 국방의 소중함과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한편 전쟁이 남긴 쓰라린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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