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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대재앙 앞에 노출된 일본, 무서운 자연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3월 17일
 
↑↑ 김성렬 대진대 도서관장,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엄청난 대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보여준 대재앙이 이웃 나라에 일어났다. 어떤 재난영화도 연출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대자연의 위력을 우리는 TV 화면을 통해 생생히 목도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원자로의 방사능 누출이 우려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일본국민들은 직면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이러한 전대미문의 참화도 참화이지만 그에 대처하는 일본 국민들의 침착함, 시민정신이다. 어지러운 위기 상황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약탈이나 절도 등은 커녕 수퍼나 주유소 등에서 새치기조차도 않는 탁월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있어 서방언론들로부터 인간정신의 위대한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극찬을 얻을 정도이다.

그들의 놀라운 자기 절제, 질서의식들을 보면서 그러나 한 편에 또 다른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에게 크게 데인 경험을 가진 우리 한국인들의 어쩔 수 없는 정서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처럼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질서의식에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얼굴들을 한 국민들이 한때 이웃나라 사람들을 그토록 잔혹하게 핍박했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잔혹한 처사들은 실제 기록으로, 영화로, 소설로, 너무나 즐비해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용수를 뒤집어 쓴 채 일본도가 목에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인을 찍은 사진, 관동대지진 때 억울하게 희생된 수천명의 한국인들, 징용·징병으로 희생된 한국인, 정신대에 붙들려가 고난을 당한 소녀들 등 마치 자동적으로 복기되는 어떤 메모리칩처럼 우리 기억 속에 그들의 악행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악독했던 일본인들을 처음으로 직접 접한 나는 한동안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1980년대 말의 약 4, 5년 동안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 때 접한 일본인들이 지금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처럼 순박하고 예의바르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30대 중반이던 때의 일이었는데 고교시절 이후로 그때까지 북한보다도 더 억척스레 혐오했던 일본인들을 막상 접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일본인들의 진면목은 무엇일까를 두고 나름대로 깊은 고심을 하였다. 그 결과 이런 결론을 얻은 터이다.

일본인들이 지금 저처럼 예의바르고 순박해 보이는 이면의 잔혹성을 소유한 것은 그들의 허무주의적 정념 때문이라고. 이는 그들 문학예술의 특징을 보면 짚이는 사정이다. 가령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노벨상 후보까지 올랐던 미시마 유키오들의 작품세계를 보면 그렇다. 그들의 소설은 도저한 허무주의 속에 첨예한 탐미적 성향을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두 사람 모두 독신이었는데 가와바타는 칠십이 넘어 자연사가 가까운 나이에 굳이 가스관을 물고 자살하였고, 미시마 유키오는 천황제와 일본정신의 부활을 외치며 자위대 옥상에서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하여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일본 문인들 중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네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끝에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도 한 인물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갑작스레 허망하게 지는 벚꽃을 좋아하는 것도 이처럼 삶에 지질구레한 미련을 두기 싫어하는 그들의 허무주의가 빚어낸 취향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허무주의가 제국주의라는 집단적 광기와 만날 때 가치무정부적인 상태에서 광적인 잔혹성을 발휘한 것이 그들의 식민주의요 이차대전의 참전인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도저한 허무주의는 역시 그들이 자리한 지리적 환경과 많은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한다. 오늘 우리가 보는 끔찍한 자연의 대재앙이 그 중요한 인자 중 하나이다. 사람이 온갖 공력을 들여 일구어 낸 모든 인공의 산물들을 단 한 번에 무화시켜 버리는 지진, 화산 폭발 등이 그들에게 허무주의적 정념을 체화시키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리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환경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적 재앙을 만나든지 전쟁과 같은 인위적 재앙을 만나든지 간에 그들은 도망칠 퇴로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하여 체화된 허무주의 탓인지 일본인들은 신을 믿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서구에서 전래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1~2%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에게 개화기 이래로 기독교가 침투된 이후로 신도가 30%가 넘는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일본인들의 침착함, 냉정함은 아마도 이러한 허무주의가 의지적으로 체화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이번 대참사의 현장에서 접한 일본인들에게서 숙명을 수용하는 눈빛을 보았다고 하는데 아마 이러한 나의 짐작과 통하는 맥락으로 생각된다.

참사를 당한 이웃을 두고 무슨 한가한 소리냐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찬탄하는 세련된 문화를 가진 나라, 우리도 직접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문화적 유물과 질서의식을 가진 나라, 최근에 와서는 우리 국민들조차도 마침내 살고 싶어 하는 나라 중 3위에 랭크된 일본의 진면목은 내게는 늘 관심사였던 것이 일본론 일석을 들먹인 이유이다.

어쨌거나 참화를 당한 이웃에 지난 모든 일은 묻어두고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야 한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공지영은 박해받은 운명을 모질게 경험한 자만이 세상을 진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긍지를 가진다고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삶의 모진 굴곡을 경험한 이들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나설 때이다.

김성렬 / 대진대학교 도서관장, 문학평론가 겸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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