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파동으로 한국은 가축들의 피비린내와 처절한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구제역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생매장을 당하였다. 생매장하는 가축에 대한 보상과 매장에 수조원의 예산이 들어간 것은 가히 기록적이다.
만약에 구제역 첫 발생 시 방역에 십분의 일의 예산이라도 집중하였다면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물론 수많은 관계 공무원들이 과로사로 희생된 것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과도한 살처분을 한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생매장한 곳에서 발생하는 침출물로 2차 오염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살처분이라는 정책결정이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게다가 동물애호가 협회의 비판은 인간의 관점에서 수백만의 동물들을 생매장시키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반인간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인간들이 과연 모든 생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이성이 있는 것인가 의심이 된다. 동물보호 단체 관계자들이 찍은 사진 중에 수많은 돼지를 불도저로 삽으로 구덩이로 몰아 떨어뜨리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서 돌고 있다.
어차피 가축들을 살처분하기 위한 구덩이이지만 너무 많은 돼지를 떨어뜨려 서로 짓밟히고 깔려서 울부짖는 돼지들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동영상을 찍는 관계자도 울음을 참을 수 없어 흐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것이 법적으로 살인죄로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금기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위가 반인륜적이어서 행위자가 양심에 허락되지 않은 나머지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파 꺼리는 것이다. 즉 생명체를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타율이 아닌 인간 내면의 자율적인 움직임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제역에 걸렸거나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생명체를 산 채로 매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에 대해서 먼저 교육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깊은 고려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돼지는 땅 속에서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고 한다. 매장터 주위에 사는 주민들은 밤늦게 까지 돼지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니 이건 참으로 반생명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축을 기르는 목장이나 양돈장, 양계장이 너무 면적이 좁아서 동물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비좁은 양육장은 가축들의 분비물로 쉽게 더러워지고 청결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더러운 환경이 가축들의 질병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가축들이 한 마리당 갖추어야할 최소면적이 기준치를 훨씬 밑도는 상황에서 전염병에 걸리면 살처분하는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보충해준다. 최소면적에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적인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결과를 국민들이 공동부담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개인 축산농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축산업자들이 기업적으로 기르는 목장이나 양돈장. 양계장은 철저하게 행정기관이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이런 대형 사고가 난 후에 뒷북을 치며 야단법석을 떠는 행정은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단지 인간의 식생활을 위한 재료정도로만 여긴 나머지 가축들의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백정이라는 천민적 신분에서 가축의 도살을 맡았던 사람들도 도살하기 전에 일정한 의식을 치르곤 했다.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양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한국사회가 가축의 살처분으로 생명 무시 국가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실로 부끄럽다. 이 불명예스러운 낙인은 구제역 청정국가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보다 더 악성적 수치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구제역으로 무자비하게 죽어간 가축들의 영령을 달래기 위해 “살처분”이란 시를 지어 보았다.
예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구제역이 사람들의 재앙인지 알았더니 그건 한참 말이 안 되는 사람 말인 줄 때늦은 후에야 알고 황당해서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사람이란 존재가 무서운 악마 같다면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구제역에 걸린 지역에 살아있다는 혐의만으로 몸에 좋다 게걸스레 먹어대던 식탁의 충신들인 수백만의 소와 돼지를 인정사정 보지 않는 불도저의 무지막지한 삽으로 땅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어 생매장하는 인간에게 재앙이란 말은 너무 안 어울린다는 자조에
웃어야할지 목 놓아 울어야할지
수백만의 돼지와 소들의 외침과 눈물과 핏물이 악귀가 되어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고 돌다 창조주 앞에 나아가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저희들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죄 없는 피조물들을 무참하게 살륙하여 삼천리 금수강산을 더럽혔노라 고하면 어찌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