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처(自處)와 자청(自請)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스스로 무엇이라고 자처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자처는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처신(處身)함’이란 의미를 지닌 말이고 자청은 ‘어떤 일에 나서기를 스스로 청(請)함’이란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런데 이 두 말의 뜻을 구분하지 않고 혼동(混同)해서 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예를 들면 야구 대표팀의 이대호는 ‘특타 훈련을 자처했다’라고 했는데 이때는 자청으로 해야 맞고 김수로가 데뷔 후 처음으로 ‘노 개런티 출연을 자처했다’에서도 자청으로 해야 맞는다. 반면 ‘지성인을 자처하는 그가 그러다니 개탄(慨歎)스러운 일이다’나 ‘1980년대부터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맹주(盟主)를 자처했다’라고 한 것은 모두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자처와 자청을 혼동해서 쓰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혼동하기 쉬운 말에 재원(才媛)과 재사(才士)라는 말도 있다. 재원의 사전적 의미는 재주가 있는 젊은 여자이지만 원래 의미는 재주가 있는 예쁜 여자이다. 이처럼 재원은 여자를 지칭할 때만 써야 하는데 우리는 가끔 박군(朴君)은 ‘우리 회사의 우수한 재원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재원(才媛)에서 원(媛)을 원(員)으로 잘못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주가 뛰어난 남자는 재사(才士)라고 해야 한다. 역시 혼동해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처라는 말 속엔 ‘뽑낸다’는 뜻이 숨어 있다. ‘으시댄다’는 뜻이 숨어 있다. 물론 뽐내고 으시대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남이 우러러보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세(虛勢)여서는 안 된다. 실속 없이 말만 번지르르 해서는 안 된다. 실속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속이 꽉 차 있어야 한다. 빈 쭉정이어서는 안 된다. 곡식(穀食)은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배운 사람일수록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남 앞에 겸손(謙遜)할 줄 알아야 한다. 지식이 흘러넘쳐서도 안 된다. 옛 어른들이 구서(九誓)에서 겸손을 강조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실(實)은 신(信)과 통한다고 했다. 실은 알곡을 말하는 것이다. 알곡은 속이 꽉 차있는 곡식이다. 속이 꽉 차 있어야 믿음이 가는 것이다. 속이 텅 비어 있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속이 텅 비어 있으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속을 채워야 하는 이유이다. 속을 채운다는 것은 실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힘을 비축(備蓄)하는 것이다.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생각하는 것이다. 미리미리 대비하면 우환이 없다는 말이다. 병(兵)과 식(食)은 버려도 신(信)을 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신(信) 속에 먹을거리[實]가 있고 병(兵)을 키울 수 있는 식량(食糧)이 가득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청은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나서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물을 들이키는 것이다. 억지로 먹이는 것이 아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물은 말이 스스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물을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마셔야 한다. 스스로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고 스스로 해야 성취감(成就感)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스승은 분위기를 조성(造成)해줄 수 있을 뿐이다. 공부는 학생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자청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자청이란 말 속엔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뜻과 오블리게이션(obligation)이란 뜻이 들어 있다.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장 서는 것이다. 명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다. 자청이란 이런 것이다. 리더십과 오블리게이션이 함께 할 때 자청은 빛나는 것이다. 자처(自處)하지 말고 자청(自請)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