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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르포=이상창] ‘오토바이 천국’ 베트남 호찌민

KOEUN 임직원들, 3박5일 연수…전쟁기념관, 사이공강 등 체험
전쟁 아픔 딛고 급성장…‘자원 풍부’ 경제대국 꿈꾸는 사회주의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1년 01월 13일
ⓒ (주)포천신문사

2011년 1월 6일 오후 7시 KOEUN(회장 최호열) 임직원 가족 13명은 3박5일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베트남 호찌민행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 올라탔다. KOEUN 임직원들의 견문과 안목을 넓히기 위해 매년 연말연시에 떠나는 해외연수로 올해는 전쟁의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베트남 호찌민을 선택한 것이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뒤바뀌는데 5시간이면 충분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등 연일 맹추위가 계속돼 두터운 점퍼차림을 한 일행은 호찌민에 도착하자마자 얇은 여름바지와 반팔티로 재빨리 갈아입기에 바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온도가 낮은 겨울철이라고 하지만 호찌민의 밤은 섭씨 25도를 웃도는 열대지방일 뿐이었다.

호텔로 이동하는 시간은 버스로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키가 훤칠한 ‘미남 가이드’는 베트남과 호찌민의 역사와 특성을 줄줄이 소개해주었다.

베트남은 북쪽은 중국, 서쪽은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접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있는 나라다. 남북으로 긴 해안선은 무려 3,444Km에 달한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까? 외국의 침략과 지배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정치적 혼란을 계속된다. 1954년 북베트남의 공산당정권이 프랑스 식민세력을 완전히 패퇴시킨 후,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진다. 이때부터 남북은 20여 년간 전쟁을 벌인다.

베트남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요? 가이드가 묻자 일행은 저마다 한마디씩 답변을 날린다.

“월남전쟁이요! 미국과 전쟁해서 승리한 유일한 나라 아닌가요?”
“쌀과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잖아요? 천연고무도 많고...아 참 야자수도 많죠?”
“오토바이요! 아마 세계에서 오토바이가 가장 많을 걸요?”

평소 갖고 있는 상식인지, 베트남 여행에 대비해 준비한 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맞는 답변들이었다. 일행이 탄 버스는 어느덧 호치민의 한 호텔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고 호치민의 첫날 밤도 깊어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통해 공산화를 이룬 나라로 각인되는 베트남은 한국과는 1992년에, 미국과는 1995년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호찌민은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남베트남(월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고, 1975년 북베트남(월맹)이 월남을 통일할 때까지는 사이공으로 불렀으나, 1976년 주변의 위성도시를 병합하여 호찌민특별시로 이름을 개칭했다고 한다.

ⓒ (주)포천신문사

베트남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일행은 말로만 듣던 오토바이 행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듬성듬성 버스나 승용차가 지날뿐 도로는 온통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물결로 뒤덮였다. 2차선도, 4차선도, 오는 길도, 가는 길도 오토바이는 마치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음식점 배달원도 아니고, 퀵서비스 배달원도 아니고, 폭주족도 아니었다. 한 명에서 세 명까지 오토바이에 올라탄 남녀노소는 직장에 출퇴근하고, 거래처를 방문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오토바이를 자가용 승용차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호찌민시에 등록된 오토바이는 무려 400만대를 넘는다고 한다. 현재 호치민 인구가 1200만에 이른다고 하니 세 가족 기준으로 봐도 한 집에서 오토바이를 최소 한 대꼴로 보유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쟁기념관에 들어서자 야외전시장에는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된 전투기, 헬기, 장갑차, 포 등이 진열되어 있고, 2층 건물의 실내전시장에는 베트남전쟁 당시의 참혹한 장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트남 학생들의 학습현장이 되고 국내외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고 있는 이곳에는 미군에 의한 처참한 피해 장면, 참전국 및 지역별 전투상황, 고엽제 피해 실상 등이 고스란히 벽면에 붙어 있었다. 전쟁은 끝났고, 당사자국간에 용서와 화해의 시대를 열었지만 당시 베트남전쟁의 참상은 기록으로 보존돼 여전히 베트남 역사의 아픔을 덮어두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마치 전쟁기념관을 통해 세계 최강 미군에게 많은 희생과 피해를 당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에 있던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관련 전시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서 파병한 한국군의 모습도 전시장에서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 (주)포천신문사

다음 날 해가 저물 무렵, 호찌민시의 외곽을 끼고 흐르는 사이공강으로 향했다. 선상유람선을 타고 호찌민시의 야경을 감상할 좋은 기회였다.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의 지류인 사이공강은 과거에는 죽음과 절망의 땅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약속의 땅으로 불리는 메콩 델타지역과 연결된다. 사이공강이 있었기에 호찌민도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람선이 밧줄을 풀고 사이공강을 가르자 선상의 무대에서는 공연이 시작됐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중국과 일본 관광객도 몇몇 눈에 띄웠지만 한국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쇼걸의 화려한 불쇼가 펼쳐지고 베트남 가수들의 노래가 이어지더니 낯익은 한국의 7080 가요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신청곡을 받는다고 하자,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중견가수(?) 최두열 고은종합전기 대표이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예상했다는 듯 최두열 대표이사는 무대에 올라 멋드러진 폼으로 ‘울고넘는 박달재’를 불렀다. 관객들이 앵콜송을 요청하자 지체없이 ‘이별의 부산정거장’으로 화답했다. 최호열 회장은 경기북부전기안전관리공사 안병호 대표이사와 전규선 전무에게도 한 곡조씩 뽑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노래가 끝나고 밖을 내다보자 유람선이 지나가고 호치민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강을 둘러싸고 있는 빌딩숲과는 달리 사이공강 주변은 아담한 빌딩들이 형상을 드러내며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유람선 아래의 사이공강은 진훍탕물과 이물질이 어둠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오염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출국을 위해 호찌민공항으로 이동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건 역시 오토바이 물결이었다. 끝없이 질주하는 호찌민의 오토바이 행렬! 거리는 젊고 힘찬 맥박으로 가득찼다. 베트남이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고 고무 생산이 세계 1위, 쌀.커피 생산이 세계 2위를 차지하는 자원대국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호열 회장은 인천행 여객기에 오르면서 일행에게 “베트남은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에게 당당히 맞서는 국민적 자부심이 있다”며 “도시 전체가 개발공사로 한창이다. 국민들도 부지런한 근성이 있어 젊고 활기가 느껴져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라고 여행 후기를 전했다.

사회주의 체제지만 자본주의 국가와도 국교를 정상화 하며 개방과 교류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아픔을 딛고 놀라운 성장을 일구고 있는 베트남이 과연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세계 경제대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

2011년 1월 3박5일 일정의 베트남 호치민 여행에서 얻은 의문부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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