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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새해에 생각하는 삶의 운용 비방(秘方)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1월 06일
↑↑ 김성렬 대진대 도서관장,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새로운 해를 맞게 되니 자연 올해는 또 어떤 한 해가 될까 하는 궁금증이 불같이 인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행/불운이 찾아올지 국가적으로는 또 어떤 사건/사고로 사회가 요동을 칠지 궁금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토정비결을 떼보고 점집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예측이 제대로 맞을 리도 없고 이런 운세 떼보기라는 것은 개인에 한한 것이어서 국가나 세계적 단위가 되면 특히 일반인들과는 관계가 멀어진다. 가령 9.11 테러 당시에 재앙을 당한 개인들의 운명을 누가 알 수 있었겠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당한 천안함의 재앙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시정의 필부가 생각하는 새해는 그저 큰 탈 없이 넘어가는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매우 째째한 희망에 그친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한 일간신문이 최근에 조사 보도한 것처럼 국민소득도 우리보다 훨씬 낮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훨씬 높은가 하면 경제 성장은 작년에 7위를 했다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바닥권을 헤맨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불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의 삶에 유익할 듯싶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불행하다’는 의식을 가장 강하게 가질까? 무엇보다, 생존에 필요한 근본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일 것이다. 우선 먹는 것, 입는 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참담한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배고프고 헐벗은 상태인데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득도의 경지에 이른 구도자들이나 가능할까, 세속의 일상적 인간들에게는 어느만큼의 먹을 것/입을 것/살 곳이 주어져야 불행하다는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행/불행의 인지 요인으로는 자신이 타인에게 얼마나 인정받느냐 하는 사항일 것이다. 아마도 기본적인 생존 요건이 마련되면 인간이 가장 강하게 집착하는 삶의 욕구로는 인정 욕구를 따를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내 능력이 이만큼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내 외모가 이만큼 매력적임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내가 가진 것이 이만큼 많다는 것을 인정받고 나아가서 부러움까지 받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常情)이다.

어쩌면 생존욕구와 인정욕구는 선후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달리는 욕구라 할 것이다. 먹어도 더 좋은 것을 먹고 싶고 입어도 더 화려한 것을 입고 싶어 하는 욕심이 이를 입증하는데 요컨대 말 타면 종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에서 이처럼 뒤섞인 욕망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성욕에 대한 인간의 욕망도 무시할 수 없지만, 배가 고픈데도 성욕부터 채우자고 하는 인간은 잘 없는 터여서 이는 한 수 뒤로 밀리는 욕망이 아닌가 싶다. 지난 시대의 남자들이 대개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 축첩(蓄妾)을 하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실상 인간의 이런 욕망에 대해서는 동서(東西)의 학자와 학문들이 이미 치밀하게 입증해 놓은 터이다. 우선 인간의 기본욕구가 경제적인 것에 있다 함은 마르크스가 충분히 논증해 놓은 터이다. 흔히 마르크스 하면 빨갱이의 원조쯤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꽤 있겠으나 이 사람은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욕구가 먹는 것에 있음을 갈파하고 이를 공평하게 나누자고 한 휴매니스트적 자질의 인물이다. 다만 그의 역사 발달 단계론이 지금에 와서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특히 그의 논리가 레닌에게 차용되면서 공산주의 폭력혁명론으로 변질되어 더 큰 오명을 뒤집어썼을 따름이다.

인간의 인정욕구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자기의 선배로 삼은 헤겔이 선명하게 정리한 바 있다. 인간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그는 ‘인정투쟁’이라 규정지었다. 그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주인과 노예가 싸우듯 투쟁을 벌인다고 보았고 이를 ‘주노 변증법’이라 이름 붙였다.

주인에 대하여 노예는 굴욕감과 종속감을 떨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펼친 끝에 오히려 주인과 노예의 위치가 뒤바뀌는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니 이것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이는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적 현실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약 500년 동안 세상을 압도하던 서구의 성세(盛世)가 한풀 꺾이면서 동양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서도 인간의 기본 욕구를 식욕과 인정욕구로 파악한 것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우리가 흔히 동양철학이라 말하는 사주풀이 같은 것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인간의 길복을 구성하는 가장 대표적인 운수 요인들로 사주는 식복(食福), 재복(財福 ), 관복(官福), 인복(印福) 등을 든다. 앞의 두 가지는 먹을 운이고 뒤의 두 가지는 이름을 내는 것과 관련이 있는 운인 데서 동서가 모두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은 같다고 보는 사고를 확인한다.

이러한 기본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오는 사람들의 불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어떠한 위정자도, 현자도 근본적으로는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도 차가운 방에서 내일 먹을 것이 없어 불안에 떠는 사람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자신을 인정받지 못해 불만과 고통에 찬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처방을 말씀드릴 수는 있다. 사람과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다.

앞서 주노변증법을 이야기했지만 동양의 주역도 세상만사의 뒤바뀜을 그 이치로 삼는다. 궁한 입장에 처한 즉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결국 통한다 하였고 통한 즉 안일에 처했다가 다시 궁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결국 현재의 불행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끊임없이 도모하는 사람에게 해결책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포천신문의 독자 여러분들도 모쪼록 이런 정신과 의지로 모든 어려운 일, 고달픈 삶을 어기차게 뚫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김성렬 / 대진대학교 도서관장, 문학평론가,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0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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