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내와 자동차로 시내를 나가다 때 아닌 정체되는 차 행렬에 짜증이 났다. 무슨 사고가 났나 보았더니 교통경찰들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 송년행사에서 자정까지 술을 마신 생각이 번쩍 나서 급하게 아내와 자리를 바꾸었다. 경찰이 자리를 바꾸느라 차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았던지 다가와 조수석에 앉은 나에게 혈중 알콜농도 측정을 요구하였다. 사실 시간이 10시간이나 흘렀으니 괜찮으련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측정치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자리를 바꾸었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는 여경찰의 뒷모습을 보면서 송년의 계절 탓이라고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송년행사에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나오는 취객들을 잡으려는 올가미 수사가 문제인지,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 휩쓸려 마셔대는 술꾼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좀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절이 오면 사흘이 멀다지 않고 술파티를 벌리는 나를 보고 아내는 엘로 카드를 여러 번 발부하였다. 공부한답시고 가방끈이 길어서인지, 만나는 사람들이 글쟁이라서 그런지 술자리는 늘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생의 가을에 들어섰다는 생각 때문에 무언가 의미 있는 업적을 남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낙엽이 떨어지고 빈가지만 바람에 떨고 있는 나무 같은 신세로 전락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쓸쓸함이 나로 하여금 술잔을 기울이게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푸념 또한 삶에 대해 치열함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채찍질하며 반성해야 하리라.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담금질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잘 입고 잘 먹는 세속적 삶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이 없다. 시골에서 자라난 우리들이 이정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도 과분하게 생각되어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연유인지 나는 화려한 강남의 거리보다 수수한 도봉동이 더 마음이 편한 모양이다. 도봉시장 돼지 머리고기 집에서 막걸리 몇 잔 걸치면 흥도 나고 부담도 없다. 옆에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친구 하나 있으면 그만이다. 단 하나,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자기 등만 따스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속물근성이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주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여전히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사회는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독거노인들이 즐비하다. 핵가족으로 자식들 출가하고 부부 중 어느 하나 세상 떠나버리면 세상에 다시 홀홀단신 외로움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노령사회에 접어드는 한국사회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또한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와 사는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숙제가 되었다. 사실 한국사회는 이들의 참여가 없이는 경제의 생산활동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엄연한 한국인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한국 국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판이다. 그들은 지금 저임금에 시달리고, 불법체류라는 법적 제재에 가슴을 졸인다. 언제 출입국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추방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와 똑같은 굴욕적 체험을 한 바 있으니 어찌 법의 잣대로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연평도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해빙 무드를 맞던 남북의 교류가 지금은 차가운 빙벽의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국민들의 가슴은 샘물처럼 솟아오르지도 못하고 시냇물처럼 흐르지도 못하고 있다. 실존의 칼등에 서있는 긴장의 순간에 조금의 허위가 틈타서는 안된다.
지금은 해묵은 이데올로기도 무의미하며, 인간의 편을 가르는 계급갈등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인도주의나 허위의식 없이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실존의식만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인 박영근은 우리들의 가식적 삶이 존재할 수 없는 겨울산의 “빙벽”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