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이중희] 부끄럽지 아니한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10년 12월 13일
 |  | | | | ↑↑ 이중희 포천문인협회 회장 | | ⓒ (주)포천신문사 | |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은 선열들께서 나라와 민족을위해 목숨을 초개와같이 버리시고 희생하신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어뢰와 폭탄이 쏟아져 많은 젊은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잃은지가 몇일이나 지났다고 신성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폭력배들과 같은 추태를 부린단 말인가.
이를 보기가 너무 역겨워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싸우셨는지를 들려 줌으로서 정치권을 경고하고자 한다.
선조들의 절명시(絶命時)를 접하면 그분들의 우국충정에 가슴이 복받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분들의 우국충정의 메아리가 정치권에도 전해져 정치권이 정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선생은 절명시에 이르기를.
“조선왕조 마지막에 세상에 나왔더니/ 붉은피 끓어올라 가슴에 차는구나/ 19년동안을 헤메다 보니/ 머리털 희어져 서릿발이 되었네/ 나라잃고 흘린눈물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마져 가시니 슬픈마음 더더욱 섧다/ 홀로 고향산에 우뚝서서/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가이없다/ 저 멀리 바닷길 보고파 했더니/ 7일만에 햇살이 돋아오네/ 천길만길 저 물속에 뛰어 들며는/ 내 한몸 파묻기 꼭 알맞네”
이 시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경북안동에서 의병을 이르킨 적이있는 벽산 김도현선생님이 자결하기 1년전인 1913년에 쓰신 절명시이다.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자결하려 하였으나 아버님이게시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부친상을 다 치루고 나서야 비로서 1914년에 도해순국(蹈海殉國)을 결행하셨다.
즉, 바다로 걸어 들어가시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추운겨울 동짓달 영덕군 영해면 앞바다에서다.
이강년(李康秊) 선생은 절명시에 이르시기를,
“50평생 죽기를 다짐했던 이마음/ 국난을 당하여 어찌 살 마음을 먹으리/ 다시 군사를 이르켰지만 끝내 나라를 찾지 못하니/ 지하에도 남아있을 칼날같은 이마음”
이 시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셨던 이강년선생님이1908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쓴 절명시이다.
선생은 의병을 이르키시면서 이런 격문을 발표하셨다.
“조약을 강제로 맺어 우리의 국권을 빼앗고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욕뵈니 원수를 어찌 남겨 두겠는가”
이 시는 박상진(朴尙鎭)선생의 절명시이다
“다시 태어나기 힘든세상/ 다행히 장부의 몸을 얻었건만/ 이룬것 하나없이 저 세상 가려하니/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비웃는구나.”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하고 / 임금님 원수도 갑지 못했내/ 나라의 땅도 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 가나.”
이 시는 박상진선생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그 사령관으로 무장 투쟁을 벌이 셨다가 체포 되시어 1921년 8월 대구감옥에서 사형당하시던 날 아침에 쓰신 시와 하루 전에 쓰신 시이다.
선조들의 이렇게 크고 위대한 희생위에 이룩한 나라인데 어찌 국회가 정치인들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의 장이 된단 말인가.
이중희 / 포천문인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1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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