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갇힌 영혼을 풀어주어야 해요 자고로 영혼이 묶여있으면 잠은 떠돌기 마련이죠 허물 때엔 손톱으로 해야 해요 그래야 영혼이 잔잔한 진동을 느끼고 저에게 말을 걸거든요 이 벽을 허물면 블랙홀이 있을 것만 같아요 영혼은 소리 없이 바람을 파먹거든요 이 부스스 떨어지는 작은 바람까지
벽은 허물수록 빽빽하게 숨소리로 차고 여자의 손톱에도 딱딱한 덩어리 같은 바람이 낀다
귀 다섯 개와 입 하나의 노래
몇몇의 남자와 여자가 소리를 먹고 있다
애기 울음소리에 신경질적인 엄마의 발소리를 발라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유 속에 머쉬멜로를 잔뜩 넣고 딸기와 함께 뚝뚝 떠먹는 맛이지요 물론 저는 소리 외엔 먹을 줄 아는 게 없소만. 얼마 전부터는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덥석 물었다가 고양이처럼 찝찝한 맛이 나서 관뒀소 그런데도 묘하게 끝 맛이 당겨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계속 먹고 있었소 사카린이 잔뜩 들어간 뻥튀기를 생각 없이 먹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숨소리까지 먹고 있었다 숨을 먹을수록 호흡이 가빠지고 위는 그럴수록 더 숨을 원했다 귀는 소리로 가득차고 입만 아가미처럼 호흡하고 잠깐 떴던 눈꺼풀 위로 미세한 바람 덩어리들이 내려앉는다
손끝이 시리다가도 따스한 햇살이 지붕마다 투영되는 참 좋은 날씨입니다. 몇 일전 신촌에 헌책방을 가던 도중 소식을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이라서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공모로는 수상작이 없어서 받아보고 싶단 막연한 바람이 있었는데, 공모로의 첫 상이라 나름의 의미를 가지게 되네요.
세상의 의미와 사물을 늘 다르게 본다는 것은 저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 봐오던 것이 새롭게 보일 때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남들이 보는 것, 이미 익숙해져 무뎌진 것들을 꺼내서 닦고, 다르게 배치해서 그것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느 날은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진 글들을 보면 뿌듯하고 즐거움을 느낍니다. 언젠가 그런 노력들이, 이해조 선생님의 작품처럼 문학사와 역사에 새 획을 긋게 될 날이 올 거라 믿고 저는 지금처럼 묵묵히, 즐겁게 써 가겠습니다.
동농 선생의 명작 「자유종」 100주년을 기리는 이해조 문학상 응모작은 모두 258편이었다. 전국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시부문 심사는 예상외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창작수준이 아주 높은 곳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10여 명의 예비시인들이 벌이는 소리 없는 싸움에 심사위원들은 기쁨 속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당장 시인으로 등단해도 별로 손색이 없을 듯한 유승연, 박주현, 이서연, 백온유, 이현진 등의 작품은 학생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유승연의 「텔레스코프」는 소통부재와 거기에서 오는 현대인의 심리적 혼란을 절묘하게 형상화했다. 박주현의 「고향」은 몽골처녀를 제재로 하여 외국인 근로자의 향수를 능숙한 솜씨로 그려냈고, 이서연의 「바그다드」는 전쟁 속에 무너지는 인간의 참혹함이 가득한 이라크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백온유의 「성문(聲紋)」과 이현진의 「내 안의 거울」도 현대 한국인의 도시적 삶의 현상적 무늬와 그 심리적 파문을 예리하게 묘파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작(秀作)들은 일부 전문계 학교에 몰려 있어 일반고등학교 학생들과 현격한 편차를 보이고 있어 아쉬운 현실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유승연의 「텔레스코프」를 최우수 작품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진폭이 큰 상상력의 힘과 예술적 실험성의 안정적 싹을 높이 산 것이다. 연극에서의 ‘제4의 벽’을 제재로 하여 의미를 가진 수많은 현실적 언어들이 동시에 발화되어 무의미화 되는 현대인들의 삶의 혼란과 거기에서 오는 무가치성을 곱씹어 보게 하는 뛰어난 감응적 자력이 성공적으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작품들이 고른 질적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최종 선택의 한 이유가 되었다. 박주현은 묘사력이, 이서연은 함축성이, 백온유와 이현진은 두 가지 다가 아주 조금씩 부족했다. 미세한 차이일 뿐이다. 정진하여 미래의 훌륭한 시인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들 외에 유병현, 유다인, 허정, 윤효선 등도 아주 좋은 재능이 반짝이는 기대주들이었다. 모두 수준 높은 우리 시의 희망의 별들이다. 정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