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천장에 붙었다>(경기도 수원)는 실재(實在)와의 만남을 섬뜩하게 그린 수작이다. 실재와의 만남은 우리 삶을 고장 내고 붕괴시키는 현실의 일각을 보여준다. 서술자 ‘나’는 짓궂지만 좋아하는 짝꿍 유치원생인 동수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천당에 갔다’는 선생님의 전화 통화를 엿듣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다가 ‘동수가 천장에 붙었다’고 엄마에게 말한다. 사실은 동수가 ‘나’에게 길을 건너 바래주고 중간에서 돌아서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현장을 목격한 ‘나’는 ‘선택적 기억상실 혹은 언어의 선택장애(?)’를 일으킨 상태다.
‘나’를 데려오던 엄마 역시 동수의 사고를 목격한 터라 딸아이가 정상인 줄 알고 다음날 유치원에 보낸다. 여러 날이 지나도 동수는 유치원에 오지 않고, 엄마도 심한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다. 동수도 엄마도 없는 허전함에 울음보가 터져버린 나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빠와 함께 입원한 엄마에게 간다. 붕대로 칭칭 감긴, 절대 안정이 필요한 엄마에게 매달리는 나를 아빠가 떼어내고 주차장으로 데려가 태우려는 순간 나는 도망친다. 그다음 서술자는 유령으로 바뀌고 서술도 유아의 경어(敬語)에서 평어체로 바뀐다.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는 유령이 되었고 감정도 증발된 상태라 극히 건조한, 그래서 더욱 섬뜩한 서술이 된다. 그러니까 이 유령-서술자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현장과 이를 목격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 재현은 현실의 찢김을 통해 그 참혹한 실재를 드러낸다. 이 실재가 질문한다. 무엇이 우리 삶을 이토록 죽음의 질주로 내모는가? 참혹한 죽음들-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제1위인 나라! 이 조급증과 광란의 질주야말로 우리 모두가 불치의 심각한 증상들을 노정하고 있는 환자들이 아닌가. 전체가 병동인데도 정작 아무도 아픈 사람은 없는 참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 ‘문학은 이와 같이 몰락하면서도 치명적인 질문을 하는 윤리학’이란 명제에 이 작품은 잘 부합하는 강렬한 내용 및 탄탄한 구성을 갖췄다.
최우수작과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작품이 김보람의 <당신의 장례식>(고양예술고)이다. 이야기가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2인칭으로 서술한 경어체가 감칠맛 나고, 할머니 장례식장에 찾아가면서 회고하는 추억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다. 쓰러진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가족들의 분분한 말씨름 사이로 불쑥 비집고 나타난 할머니는 언젠가 할아버지가 후처를 들이겠다고 하시던 그 당사자인 듯, 슬쩍 암시하는 수법도 은근한, 감춰진 속 깊은 이야기가 있을 듯 후광을 드리운다. 5년 동안 조용히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온 할머니와, 이를 애써 백안시하는 식구들의 대비가 참 비/인간적으로 선명하다.
어머니가 필요할 때마다 꼭 나를 심부름꾼으로 들여보내곤 하는 할머니 방에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냄새가 난다. 어느 날 나는 방주들이 없는 줄도 모르고 빈방에 심부름 차 들어갔다가 침대 위에 놓인 작은 버선 한 켤레를 발견하고 신으려 애쓰다가 침대 위를 다 헝클어놓고 마침 들어온 할머니의 등 뒤로 따가운 엄마의 눈총을 받는다.
나는 설날 할머니로부터 작은 버선 한 켤레를 선물로 받는다. 10년 전의 그 선물을 꺼내들고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 모놀로그를 통해 온 가족의 냉대를 받던 할머니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조해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끝낸 할머니는 조용히 떠났다가 죽어서야 그 아들을 통해 나에게 부고를 전해온 것이다. 조문 후, 할머니의 아들에게서 망자가 남겨준 복주머니를 건네받는 고3 수험생의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새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장편(掌篇)이라는 점과 서사의 강렬성에서 최우수ㆍ우수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서술자를 ‘나’(-소민)로 설정한 조은비의 <빨간 구두>(포천일고)는 남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 이야기 선을 형성했다. 빨간 구두를 엄마에게 졸라서 사는 바람에 언니가 소풍비를 내지 못하고 가출하고 귀환하는 과정과 소민이가 언니 유민의 품에 안겨 잠드는 결말이 뭉클한 자매애를 느끼게 한다. 문장도 비문이 별로 보이지 않고 안정적이다. 가작이다.
이정대의 <달팽이집>(안양예술고)은 흐름을 탈 것 같다가도 얽힌 문맥에서 딱딱 걸리곤 했다. 비문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트럭은 당연하다는 듯 달팽이를 밟고 지나갔다.’ 트럭을 의인화해서 ‘당연하다는 듯’, ‘밟고 지나갔다’ 등은 비문이 되게 하는 조사법(措辭法)들이다. ‘근처로 달팽이집의 껍질들이 분주했다.’도 비문. 이런 예는 더 많다.
그래도 묘사의 꼼꼼함이 비교적 평가할 만하다. 달팽이집이나 다름없는 은수의 집을 묘사하는데 공을 들였다. 사실 은수는 집이 없는 ‘민달팽이’임을 부각시키는 데 어렸을 적 차바퀴에 깔려 으깨진 달팽이 속살을 연결한 병치법에서 작위적이지만 따뜻한 은유법적 시각을 느끼게 한다.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