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즘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주태익 작 “마지막 배”이다. 이 작품은 흥남철수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육이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을 그리고 있다. 막이 오르면 흥남철수의 영웅 현봉학을 사랑하는 봉심이라는 순진한 처녀가 그녀의 사랑의 상징인 꽃을 들고 나타난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전쟁 중이며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심의 마음은 봉학에 대한 연심으로 가득차서 그가 오기만 기다린다. 이념과 권력에 의해서 벌어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도 봉심과 같은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는 사랑의 열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재통일의 비전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꿈꾸었던 북한 주민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좌절의 쓴 잔을 들어야한다. 원작자 주태익은 권력자들의 전쟁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이념전쟁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돌릴 뿐이다. 미군들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공산 치하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신앙파 동생 성민과 밀려오는 중공군의 위력을 아는 신중파 성국이 죽음을 앞둔 실존상황에서 이념적 갈등을 보여준다. 민중들은 권력자들의 이념 게임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삶을 설계하게 마련이다. 공산군들에게 집을 빼앗겼다가 국군과 미군들의 진주로 집을 다시 찾은 성민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밀려든 중공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서둘러 피난의 길을 떠나야 한다. 형 성국은 동생의 적극적인 반공활동과 기독교 운동을 위태롭게 바라보며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권력의 향방에 따라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허약한 민중의 전형이다.
흥남철수의 영웅은 단연 현봉학 선생이다. 그는 육이오전쟁에서 미 십군단 고문으로서 통역관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는 단순한 통역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군과 국군의 승리를 믿고 반공활동을 하다가 원산까지 수평으로 막힌 나머지 사지에 몰린 북한 피난민을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통상적으로 전쟁에서는 군인과 군수물자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철수하는데 최우선 순위가 되기 마련이다. 당시 철수를 위한 모든 운송수단은 두 요소를 위해서 쓰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현봉학 선생은 미군측 알몬드 사령관을 눈물로 호소한다. 국군과 미군의 북진을 돕기 위해서 반공활동을 하다가 피난을 가지 못하는 수십만의 민중들을 버리고 가는 것은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인 사건이 되리라고 주장한 것이다.
알몬드 사령관은 그의 설득을 받아들여 엄청난 전쟁 물자를 불태우거나 파괴하고 그 대신 10만명의 피난민을 구출하도록 결정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천상륙작전이나 1. 4 후퇴라는 전쟁의 큰 맥락만을 주목하였지만 그 뒤에 가려져있는 인간미가 나는 작은 사건이나 에피소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현봉학 자신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여인 봉심의 아버지 김성진 장로이며, 그는 사지에 몰린 함흥 기독교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한다. 역사의 주인공은 현봉학은 김성진을 중심으로 한 가족과 교인들을 흥남철수를 통해서 구해주는 조연 역할로 만족한다. 대신 그는 김성진의 딸 봉심의 로맨스의 연인으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변신하여 나타나고 있다.
현봉학은 자유를 추구하는 이북의 민중들을 이집트에서 노예상태에 있었던 이스라엘인들을 구출하는 모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주도하면서도 한편 순박한 북한 처녀 봉심과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가 수많은 북한 민중을 구출하는 원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봉심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봉심은 마지막 배가 떠나기 직전 봉심이 오빠 봉명의 가족이 배에 타지 못했다고 오해함으로써 그들을 데리러 배에서 내리게 된다. 불행하게도 봉심이가 매에서 내리자 빅토리아호의 철문이 굳게 닫히고 떠나고 만다. 봉심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가족들의 오열과 현봉학의 통곡과 함께 막은 내린다.
주태익선생은 흥남철수라는 거대한 담론 뒤에 있는 현봉학과 봉심의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황폐화시켰는가를 암시한다. 육이오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권력과 이념의 국경선으로 막혀 서로 왕래를 못하고 있다. 국가나 이념 등의 거대담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산가족의 슬픔이나 좌절된 사랑의 이야기는 한낱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는 “마지막 배”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봉심이 가족과 봉학의 눈물과 통곡을 보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필자가 연출자로서 확신하는 것은 역사의 큰 명분만을 보려하는 것은 인간성의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흥남철수의 역사 한 페이지 속에 민중들의 엄청난 고통과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