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에 합리적(合理的) 기대와 적응적(適應的) 기대라는 말이 있다.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싶다. 합리적 기대란 미래를 내다보면서 새로운 환경(環境)에 적응해가는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말하는 것이고 적응적 기대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앞일을 점치는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말하는 것이다.
적응적 기대는 시국(時局)이 안정되어 큰 변수(變數)가 없을 경우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년에 비해 새로운 변수가 없을 경우 과거의 데이터(data)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여기서 과거의 데이터란 지금까지의 정보(information)와 각종 지수(index)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보와 각종 지수만 참고하는 것이다. 그것만을 바탕으로 계산하고 해석(解釋)하고 판단(判斷)하는 것이다. 미래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워나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적 기대를 선호(選好)한다. 안정된 삶을 희구(希求)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모험(冒險)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낯선 길 가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세상이 평온(平穩)할 때는 상관없다. 적응적 기대를 선호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럽고 요동칠 때는 정신 차려야 한다. 과거에 안주(安住)해서는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놓쳐서도 안 된다. 고난(苦難)이 따르고 고통이 따르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適應)해나가야 한다. 발 빠르게 새 길을 모색(摸索)해나가야 한다.
적응적 기대가 맞아떨어지려면 미래가 과거와 유사(類似)해야만 한다. 미래가 과거와 비슷하지 않으면 과거를 이용해 예측한 미래의 기대가 맞아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대두(擡頭)된 것이 합리적 기대라는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전개될 때 생각해낸 것이 바로 합리적 기대란 말이다.
우리는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조국근대화를 이룩했다. ‘하면 된다’는 구호를 경제학에서 이론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당대는 그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사건들이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중동전으로 촉발된 아랍권의 석유 무기화로 원유 가격이 폭등하고 이에 따라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와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과거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적응적 기대를 이용하면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도 다반사(茶飯事)일어나고 있다. 주목해야 될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 바탕을 두고 미래를 기대했다면 이 나라가 현재와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닐 것이다. 합리적 기대의 요체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정보도 이용한다는데 있다. ‘하면 된다’의 정신을 합리적 기대이론에서는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ling prophecy)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면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의 요체는 통찰력(洞察力)과 리더십(leadership)이다. 세상의 흐름을 의미있게 관조(觀照)하고 파악하는 예지력(叡智力)과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정보와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는 과거와 다르리라는 기대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실현적인 기대 곧 하면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리더십이란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것이다. 앞장 서는 것이다. 앞장서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앞장서서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앞장서는데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지도자들이 헌신(獻身)하는데 국민들이 지켜만 보겠는가? 아니다. 지도자가 믿음을 주면 국민들은 따르게 마련이다. 나라가 믿음을 주면 백성들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믿음[信]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