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使命)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의무 가운데 ‘국민의 4대 의무(義務)’라는 것도 있다. 국방(國防)의 의무, 납세(納稅)의 의무, 근로(勤勞)의 의무, 교육(敎育)의 의무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이 4대 의무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얼른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딱부러지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의무는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것이나 사명은 그렇지 않다. 사명은 특정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면 사명은 미션(mission)이고 의무는 듀티(duty)이다. 미션은 주어진 특수한 임무(任務)이고 듀티는 누구나 다 해야 하는 보편적(普遍的)인 것이다. 사명은 소명(召命)의 다른 표현이다. 소명은 영어로 콜(call)이라 한다. 부름을 받는 것이다. 명을 받는 것이다. 절대자(絶對者)로부터 또는 상사(上司)로부터 콜이나 미션을 받는 것이다.
의무는 그게 아니다. 의무는 법률(法律)로 정하는 것이다. 의무는 법률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에서 정하는 대로 누구나 해야 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범국민적(汎國民的)인 것이고 법 앞에 평등(平等)한 것이다. 누구는 해야 하고 누구는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예외규정(例外規定)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법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법 앞에 명명백백(明明白白)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명[mission]을 받지 않았더라도 명을 받은 것처럼 혼신(渾身)의 노력을 다해 일을 하라는 말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소명은 받지 않았으나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자발적(自發的)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이런 자각(自覺)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行爲) 그 자체에 뜻을 두고 의미(意味)를 부여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義士)가 그러하고 유관순 열사(烈士)가 그러하다. 그 뿐이 아니다.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다 몸 바치신 모든 분들이 다 그러하다. 그분들은 누가 시켜서 그러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무슨 대가(代價)를 바라고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 몸 바친 것이다.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누구를 의식(意識)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이비(似而非)일 뿐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사이비들이 설치고 있는가? 자성(自省)할 일이다.
의무는 타의(他意)가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사명도 타의가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격(格)이 다르다. 사명은 타의를 뛰어넘는 것이다. 타의를 초월(超越)하는 것이다. 미션을 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상을 추구(追求)한다. 때로는 전 재산을 헌납(獻納)하기도 하고 귀중한 생명을 초개(草芥)처럼 바치기도 한다. 범인(凡人)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한 자각(自覺)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용기(勇氣)가 있어야 한다.
사명감에 불타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해야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할 사람이 없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해야 한다. 나 말고 누가 있는가? 이것은 사명이다. 소명이다. 부름을 받은 것이다. 명을 받은 것이다.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명감에 불타기 때문이다. 사명감은 이처럼 자의(自意)와 자각에 의해 발하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위해서 몸을 던질 때 발하는 것이다. 오늘 이 시점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