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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광조] 논두렁 밥


박광조 기자 / kjppark227@hanmail.net입력 : 2010년 11월 01일
↑↑ 박광조 본지 자문위원, 전 하계중학교 교장
ⓒ (주)포천신문사
고향으로 돌아와서 약 한달 보름여 되는 날이다. 하루가 조금은 지루하던 차에 모처럼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고향으로 왔으니 추수하는데 와서 논두렁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참 오래 만에 들어보는 논두렁 밥이다.

정말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가. 대학시절 재경포천학우회 여러 학우들과 고향에 봉사활동 나와서 우리가 손수 지은 밥으로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겁지겁 시장기를 채우고는 나무그늘에 누워 밀짚모자에 얼굴을 묻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맛,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건만 45년이 지난 지금 논두렁 밥의 추억에 잠긴 채 어룡리 친구네 논으로 논두렁 밭두렁 누렇게 고개를 숙인 들녘으로 한참이나 걷고 있는데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지만 금방이라도 알듯 귀에 익은 콤바인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 대여섯 명이 제각각의 모자를 눌러 쓴 채로 담배를 물고 한참 손짓 발짓 하면서 열심히 대화중인 것이 어렵사리 농사가 그 많은 비가 왔어도 웬만큼은 된 기분이 들어온다. 참 비도 엄청나게 그리고 줄기차게 내리더니, 그래도 농부들의 노력은 자연재해도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쓰러진 벼 포기는 낫으로 베어야 한다니 그놈의 태풍과 비 때문에 벼 수확도 줄어들고 추수도 두 번 일을 해야 하니 얼마나 고생인가. 그래도 친구네 벼는 말을 들어보면 평년작 수준이란다.

이것을 두고 천만다행이라 하는가? 먼저 온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누런 박스하며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가까운 음식점에 시켜온 된장찌개와 돼지고기를 벌겋게 버무려 만든 제육볶음, 요즘 한참 치솟고 있는 배추 속, 보기만 해도 소주 한 잔 생각이 나는 것은 분위기 탓일까. 아님 향수 때문일까?

박스 위에 염치 불구하고 두 다리 쭉 펴고 앉으니 소주가 한 순배 돌아온다. 불현듯 교사시절 스카우트 지도교사로 대원들과 방학을 이용해서 산으로 들로 야영을 하면서 함께 취사하며 즐겁게 생활했던 기억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모든 것이 달라졌나보다. 옛날 논두렁 밥은 새참이나 점심 때가 되면 엄마들이 광주리에 가득담은 음식을 머리에 이고 오셔서 ‘밥 먹고 해요’, ‘새참이요’, ‘새참 잡숩고들 해요~’라고 했었다.

일하던 손 그대로 우르르 달려들어 막걸리 한 사발에 ‘시원하다’를 연발하면서 먹던 것이 이제는 음식점 밥에다 막걸리 대신 소주와 맥주로 많이 달라졌다.

누가 고향을 엄마의 품과도 같다고 했던가? 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고향친구들 그리고 비록 시켜온 음식이지만 논두렁에 걸터앉아 “많이 먹어”, “자, 소주 한잔 하구” 하는 정감 넘치는 대화는 시멘트문화로 둘러싸인 대도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닌가.

현직에서 퇴임하고 몇 해라도 서울에서 머물렀던 것이 후회스럽다. 하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무엇 하나 준비 되지 않아 망설이던 내게 용기를 준 사람이 우리 집 사람이다. 공기 좋고 산수 좋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 벗하며 남은 인생 건강하게 살아 보자고 용기를 부추겨 준 사람이 집사람이다.

하긴 집사람도 고향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 6.25때 함경도에서 엄마 손에 이끌려 피란 나온 것이 환갑을 훌쩍 넘었으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나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훨씬 크고 깊으리라.

콤바인은 계속 돌고 두어 순배 돌아간 소주에 낮부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취기가 오른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어릴 적 이야기며 농사 이야기며 서울 촌놈 귀향 했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둥 이렇게 한나절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에야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나 집으로 오려니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뭐라도 조금 도움이 되고 왔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참 기분 좋은 하루였다. 내년 모내기와 가을추수 날에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 그리고 돼지고기도 몇 근 준비 해야지.

박광조 / 포천신문 자문위원, 전 포천 하계중학교 교장
박광조 기자 / kjppark227@hanmail.net입력 : 2010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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