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장학협의회 날짜가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학교 주변 환경이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하다. 수업 전 전교생에게 실내 청소를 하도록 하고 주무관과 함께 중앙현관 앞 계단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화분들을 정리했다. 화분 몇 개 들어 옮겼는데도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송 맺혔다.
얼마 전 친구 교장 학교에서 노란 색 소국과 자주색 소국화분 120여개를 얻어왔다. 아직 피기 직전이라서 관리하기 위해서 한 곳에 모아 놓았는데 피기 시작했다. 참 샛노란 소국에 자주색 소국이 어울리니 참 예뻤다. 그래서 각 교실로 노랑 소국 화분 4개와 자주색 소국 화분 2개씩 분배고 남은 화분은 중앙현관 출입구와 특별실에 배치했다. 외부 환경 정리를 마치고 나니 둘러보신 분들께서 참 아름답게 배치되었다고 찬사가 자자하다.
외부 환경 정리를 마치고 교장실로 들어와 잠깐 사무를 보려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를 보니 발신자 이름이 뜨지 않았고 잘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웬 낯 검은 전화가 오나’하면서 받았다.
“감사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라고 말하니 “혹시 이호연선생님이십니까?” 라고 묻는다. “예 맞습니다. 이호연입니다.” “선생님! 저 강평기입니다. 금진에서 살았는데 6학년 1학기 때 부산으로 전학 갔습니다.” “지금까지 오랜만에 전화가 와도 잘 알아봤는데 얼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데 참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러면 혹시 이순희는 아십니까?” “알고말고 전에 한번 만나기도 했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순희와 같이 선생님 뵈러 가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내일-2010년 10월 14일(목)-괜찮겠는데.” “그렇습니까? 그러면 내일 순희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제자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 할 때 몹시 당황했다. 이름과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몇 제자들에게서 오랜만에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다. 30년 넘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전화를 받으면서 이름을 듣는 순간에 제자의 모습이 선명(鮮明)하게 떠올랐는데 강평기 제자에게는 제자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까지도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몹시 안타깝고 황당하고 미안했다.
“그러니까 6학년 1학기 다니다가 전학 갔단 말이지?” “예”
그렇다면 길어야 6개월 담임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으니 답답하고 미안할 것 밖에 없다. 제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항이 전혀 없는데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필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찾아온 이유는 이렇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사업이 실패하여 외가에서 동생과 같이 생활했는데 6학년 1학기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단다. 전학 가던 날 전학 서류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학교를 떠나는 것이 서운하고 아쉬워서 너덧 차례 학교를 뒤돌아보았는데 제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필자가 학교 뒤쪽에서 지켜보고 서 있더라는 것이다. 부모님도 보살펴 주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떠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 준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원 다닐 때 많은 방황을 했는데 그 때 전학가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를 지켜보았던 필자를 생각하며 ‘어디선가 선생님께서 나를 지켜보시고 계실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회계사에 합격하게 되었고 회계사 합격 체험수기를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수기를 작성할 때도 필자가 지켜봐 주셨던 일로 인하여 마음을 추스르고 합격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제자에 대해서 아직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유추해 보면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전학을 가게 된 제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서 언덕을 넘어가는 제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던 것 같다. 교사는 사소한 상황에서도 제자에게 큰 감명을 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 감명이 평생 동안 삶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에게서 가끔 전화가 온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지금까지 나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 많이 계시지만 자진해서 전화를 드린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스승에게 전화를 드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전화하는 제자에게 ‘넌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오래 전에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에게 전화를 드린다는 것은 네 스스로 자립해서 삶을 잘 꾸려가고 있다는 증표인데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될 줄 믿는다’라고 마음속으로 제자에게 덕담을 전한다.
밋밋한 일상생활 속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제자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진한 감동을 받는다. 만일 제자를 가르쳤던 그 시절에 제자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안일한 태도로 가르쳤다면 35년의 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스승이라고 찾겠는가? 그래서 교직이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