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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홍을표6] 이해조(李海朝)와 자유종(自由鍾)(최종회)

100년만에 다시 울리는 ‘자유종’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10월 06일
↑↑ 홍을표 동농 이해조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 (주)포천신문사
이인직이 심혈을 다해 만든 ‘은세계’는 어떤 세상인가? 소설은 첫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잘던 눈발이 굵어지고, 드물던 눈발이 아주 떨어지기 시작하며 공중에 가득 차게 내리는데, 굵은 체 구멍으로 하얀 흰무리 떡덩어리 같이 되었더라. 사람이 발 디디고 사는 땅덩어리가 참 떡덩어리가 되었을 지경이면 사람들이 먹을 것 다툼 없이 평생에 떡만 먹고 조용히 살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나...” 운운.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떡이다.

이인직의 ‘은세계’가 자본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라면 지금이 ‘은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민족 없는 ‘은세계’를 바랐지만 지금 우리는 엄연한 민족국가에 살고 있다. 이인직은 민족 없는 근대(近代)를 위해 친일(親日)을 했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화 시대에도 이인직의 교훈은 유효하다. 또다시 민족 없는 세계화를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종’에서 제시한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안목에 서서 세계화에 대응할 것인가?

이해조가 ‘자유종’에서 그토록 절규하던 근대적 보편교육은 이제 거의 실현되었다. ‘자유종’에서 홍국란의 입으로 했던 말 중에 한문을 폐하고 “그제야 국문을 가위 글이라 할 것이니, 이 일을 예산한즉 오십 년 가량이라야 성공하겠소.”라고 순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다던 그 예언도 거의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자유종’에서 유교를 개혁하여 서구 사회에 대응하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려 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의 물결 앞에 선 우리들에게 참으로 심오하고 원대한 대안인 것이다. 공자를 비판하고 유교를 억압했던 중국도 이제 와서 서구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원천을 유교에서 찾고자 하는 것을 볼 때 이해조의 ‘자유종’의 울림은 아직도 쩡쩡하다.

동학의 평등사상을 내재화하여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고 여성 교육을 권장하려는 이해조의 구상은 오늘날 페미니즘에 맞닿아 있다. 국치 이후에도 그는 판소리계 소설을 연이어 발간했다. 그리고 조선의 소리를 집성한 ‘정선조선가곡(精選朝鮮歌曲)’(1914)을 집필했다. 우리의 전통의 바탕에서 새로운 것을 접목하고자 한 그의 절충주의적 태도는 겉으로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태도에서 생산된 문학적 성과물은 실로 우리의 문학사 속에 면면히 이어 나와 우리 문학과 문화 전반의 큰 바탕이 되었다.

민중적 기초가 없는 상층 엘리트의 급진적 개혁은 친일로 귀결된다는 점이 ‘은세계’의 정치적 함의라면, 이해조의 ‘자유종’은 수십 년 수백 년을 바라보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자유종’이 당대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울리고 있다. 이해조는 참으로 역사를 길게 보고 거시적인 비전과 높은 안목으로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았다.

당대적 정치현실 앞에 서로 맞대결을 펼친 두 거물의 1908년부터 1910년까지의 승부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이제 막을 내린다. ‘자유종’과 ‘은세계’의 치열한 대결에서 당대에는 ‘은세계’가 이겨 우리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으나 결국 민족해방운동과 국제정세의 거대한 흐름에 따라 일제는 패망하고 ‘자유종’이 다시 울렸다. 최후의 승자는 ‘자유종’이다. ‘은세계’의 주인공 옥남의 고압적인 연설이 희화화되고 ‘자유종’의 토론자 신설헌의 페미니스트적인 정론이 우리 시대의 ‘자유종’으로 다시 울린다.

이해조의 문학과 정치의 성패는 고스란히 우리 문학과 정치의 성패와 괘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의 역사와 위상이 곧 우리 문학의 역사와 위상이다. 이해조의 작품에 녹아있는 인물과 생각은 그대로 우리의 100년 전의 우리의 조상의 모습이고 생각이다. 그가 사랑한 민족과 민족의 예술은 그대로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문학과 예술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해조의 한계와 성취가 곧 우리 문학의 근거이고 뿌리이다. ‘자유종’의 가치가 일제의 동토를 견디고 이겨 나와 우리 문학의 기반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이번 자유종100년제의 백미인 ‘자유종’ 연극 공연이다(포천신문, 2010. 6.24, 7.5, 7.7 ; 연합뉴스 6.21, 7.1 ; 매일경제 6.21 ; 서울신문 6.28 ; 조선일보 6.30 참조).

100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이해조의 ‘자유종’이 새롭게 울린다. 이로써 우리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기점이 세워졌다. 다시 말하면 ‘자유종’과 ‘은세계’의 100년간의 기나긴 대결에서, 비로소 계부(繼父) 이인직으로부터 친부(親父) 이해조로 우리문학사에서 근대 소설의 계보를 바로잡게 된 것이다. 나는 ‘자유종’ 발간 100주년 및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는 문화사적인 의의가 바로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끝>

홍을표 / 동농 이해조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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