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사건이 지난 지 9년이 지났지만 미국을 비롯한 온 세계는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지만 그 이후로 외국으로 여행할 때마다 공황에서 이루어지는 엄격한 검색과정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하고 심지어는 알몸 투시기를 통과해야하는 근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뉴욕에서는 맨해탄의 그라운드 제로에 이슬람 모스크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분노한 급진적인 목사 태리 죤스가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이 미국을 성토하면서 제2의 9.11의 기미가 보인다. 서구와 중동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종교적 갈등으로 비화하여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테러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인류의 가장 처참한 비극을 지금까지 연출해왔고 암담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9.11 이후에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을 사전에 제압하여 테러의 원인자를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 및 핵무기를 개발하려한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손발을 잃고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은 세계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아닌가. 오바마 정부는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에서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 많은 희생을 치룬 전쟁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9.11사태는 분명 이스라엘과 이슬람국가 간의 문제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잃고 오랜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힘을 빌려 팔레스타인 민족을 밀어내고 건국을 강행했다는 것은 현대사에서 주지의 사실이다. 이슬람교도로서 팔레스타인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많은 이슬람국가들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십자군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 첨단의 무기와 핵으로 무장된 상황에서 종교적 갈등을 무리하게 확산시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맨하탄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곳에 이슬람 모스크를 건립하려는 시도는 분명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응하여 이슬람의 코란을 불에 태우겠다는 목사의 언행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자살폭탄 테러를 마다하지 않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테러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9.11사태의 교훈을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인들은 일부 미군들이 아프카니스탄의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전리품으로 그들의 손가락을 잘라 가지고 다닌다는 보도에 놀라고 있다.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을 마치 야생동물을 사냥하듯 살해하고 신체의 일부를 지니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두가 종교적 갈등을 무한대의 증오심으로 악화시킴으로써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증오심은 인간의 판단력을 빼앗고 인간의 모습을 짐승의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어떤 종교인은 기독교이든 이슬람교든 종교의 이름으로 증오와 악행을 일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관점은 성경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어떻게 악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이라크전쟁의 참화를 보고 살생보다는 평화를 가슴에 새기자는 뜻에서 “이라크 폐허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시를 써보았다.
“지난 밤 폭음에 놀라 휘둥글어진 눈으로 창밖을 보니 예리한 섬광이 창문 사이로 달려들어 가냘픈 가슴에 못을 박았어요 날마다 뛰놀던 길 가에서 어린 소녀가 피 흘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오금이 저린 다리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어요 평화롭게 기러기 떼 날아가던 하늘에 굉음의 전폭기들이 죽음의 탄두를 비 내리듯 떨어뜨리다니 당신들 아름다운 나라 힘센 핵기사들이 겨우 어린 나를 죽이려 하나요 당신들은 환상의 디즈니랜드 만화영화에 나오는 백마를 탄 기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