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고려 또는 조선시대에는 음서(蔭敍)제도가 있었는데, 이 제도는 공신이나 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특별채용 제도이다. 일명 문음(文蔭)·남행(南行)·음사(蔭仕)·음직(蔭職)이라고도 했다.
음서제도는 고려 목종 원년(997년)에 5품 이상의 관리 자제에게 음직을 주도록 했던 것을 시작으로, 문종 3년(1049년)에는 그들에게 전시(田柴)를 지급하는 공음전(功蔭田) 제도까지 마련되었다. 전(田)은 논밭 과 같이 곡물을 대주기 위함이고, 시(柴)는 임야와 같이 땔감이나 약초 등을 공급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고위 관리들의 품위유지비로 지급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음서제도가 정치적 지위의 세습이었다면 공음전 제도는 경제적 부의 세습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음서와 공음은 고려시대 문벌귀족사회를 형성케 하는 바탕이 되어 주었고, 조선시대에는 음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공신이나 2품 이상의 관리에게 아들 손자, 사위, 형제, 조카까지 공직을 주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고위 관리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3품관에게는 아들, 손자만으로 한정하는 상향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음관은 원칙적으로 장자만이 받을 수 있었으나, 장자가 유고시엔 장손이나 차남이 받을 수도 있었다. 나이 규정도 18세 이상이 원칙이었으나, 실제로는 15세를 전후하여 관직에 등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父)와 조부(祖父)의 정치적 역량에 따라 승진하는 속도의 차이도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이 음서제도의 시행으로 권문세족들이 함부로 날뛰어 농장이 확대되고 신하의 권한이 강화 되어 왕권을 약화시켰고 백성들은 귀족들의 노예로 전락되게 만들었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이른바 특권층인 권문세족의 횡포가 극에 달하여, 세도정치가 횡행하였고 삼정의 문란을 가져와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기득권층은 점점 더 부를 축적하게 되는 폐해를 가져왔다.
원래 과거제도는 유능한 인재를 공평하게 등용한다는 취지로 실시된 의미 있는 제도였으나 이런 특혜로 인한 차별이 심화되어 그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인재등용제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시험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장 실력 있는 등용문을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이른바 3대 시험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이다. 이렇게 사법시험을 통과하면 국가의 법을 움직이는 판사나 검사, 또는 변호사가 될 수 있고, 외무고시를 통과하면 외국과의 외교를 책임지는 외교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행정고시를 통과하면 행정부의 실세이며 실무의 핵으로 활동하는 사무관으로 바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여전히 고시가 출세의 등용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비록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두뇌가 명석하여 오로지 공부에 매진하여 수년간의 수험생활을 거쳐 고시에 합격하는 순간, 인생이 역전되어 집안 전체를 일으키기도 하고, 신분이 바뀌어 대대로 그 권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과거(科擧)시험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고시이다. 이 제도가 있어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반전의 기회가 일반인에게도 그나마 주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시는 길은 멀고도 험하여,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오로지 시험에만 매달려도 합격을 보장할 수 없는 바늘구멍과 같은 경쟁을 통과해야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통과하는 것이 고시합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행 고시제도가 폐쇄적인 제도라는 지적도 있어 왔다. 전문성과 직무수행 능력보다 고시 책만을 파고들어 고위 공직자를 양성해온 현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소리도 많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도 최근 벌어지는 변화를 보며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우려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채용방법의 변화는 일반 국민들에게 있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공부하며 좋은 학력과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 고위직을 독식하는 이른바 '현대판 음서제도'로 전락되어 시험을 볼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특채'라는 말이 자칫 '특혜채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고뇌가 더욱 커지는 것은 기우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상황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면, 현실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자녀가 의사가 되려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수억의 학비를 지불해야만 되고,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에 들어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고, 고위 공무원이 되려면 박사학위를 받고 유학을 다녀온 후, 말 그대로 줄과 빽이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전 투자의 빈익빈 부익부를 일반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뒤덮고 있는 ‘현대판 음서제도’로 비유하는 것은, 특별채용의 현재적 모순을, 아무리 타당성을 가진 훌륭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국민 모두의 걱정과 의심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신뢰마저도 잃을 수 있으니, 이번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온전하게 실행하여 서민의 자녀도 출세의 길을 열어주는 지혜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