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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홍을표3] 이해조(李海朝)와 ‘자유종(自由鍾)’(2)

‘자유종’(1910) 출간의 정치적 배경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09월 03일
↑↑ 홍을표 / 동농 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 (주)포천신문사
이미 알려진 바대로 지난 참여정부가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를 통해 일제하의 친일행위에 대하여 그 전모를 다 밝혔는데, 2005년 5월 31일, 4년 6개월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25권, 총 2만 1천여 쪽에 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에는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조사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보고서에 의해 이해조에게 친일행위는 해당 없음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해조의 친일행적은 아무리 조사해도 나타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간의 친일의혹을 말끔히 일소했고 반면 이인직은 그의 화려했던 친일행위가 낱낱이 드러났다(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인직〉, 《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2006. 12, 852-863면).

위 위원회의 규모와 성격에 비추어 일제 당시 일정 이상의 지도급 인사 대부분을 전수 조사하여 장기간에 걸쳐 조사하여 밝힌 내용이므로 지도층의 친일반민족행위의 전모가 거의 다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애국계몽기에 민족운동에 동참했던 많은 민족인사들 중에서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의 친일행위에 대한 엄중한 판정을 받게 되었다.

계몽기 민족인사들의 자강운동(自强運動)은 네 계열로 나뉘는데, 선실력양성론(先實力養成論)에 서 있던 대한협회(大韓協會) 계열, 유교개혁을 통해 점진적인 문명개화를 주장하던 황성신문(皇城新聞) 계열, 독립전쟁을 주장하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계열, 실력양성을 통한 국권회복운동과 인격수양을 주장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계열이 그것이다. 1907년 7월 정미조약(丁未條約)을 비롯한 일단의 망국 사태에 직면하여 자강운동 내부에 노선상의 갈등이 일어나 강경론과 온건론의 좌우분화가 생겨 신민회(新民會)와 대한협회가 분화했다.

국치 직전의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이인직은 이완용(李完用)의 심복으로서 소위 ‘한일합방‘ 공작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다. 천도교에서 이탈한 이용구 일파가 만든 일진회(一進會)의 합방청원(1909.12)에 선수를 빼앗긴 이완용 일파는 자신의 심복인 이인직을 아바타로 내세워 합방 공작의 경쟁단체인 일진회를 견제하고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국민연설회(國民演說會)다.

이 단체는 일진회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이용하기 위해 민족적인 성격의 계몽단체인 대한협회, 서북학회 등과 협력하려 했지만 이들 단체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연합하지 못하고 일부 일진회 인사들을 빼내온다.

국민연설회는 합방공작의 총지휘자인 이완용의 정치 전략에 따라 그의 심복인 이인직에 의해 은밀하게 수행되는데, 이는 일진회의 합방주도권을 견제하고 대한협회 등의 온건파 인사를 포섭하여 자강운동 각 계열의 연대를 와해시키고 이간하여 민족운동을 약화시켜서 자신들이 합방의 주도권을 쥐는 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코자 한 원대한 정치적 노림수다.

이인직이 주도로 그가 경영하던 원각사(圓覺社)를 무대로 연설회가 개최되었는데 1909년 12월 8일 첫 연설회에서 이해조는 임시서기로 선출된다. 이해조는 온건론에 속하는 대한협회 계열의 핵심요인이므로 이인직은 그를 중요한 포섭대상으로 삼았다.

나중에 결국 알게 되고 말았지만 이인직은 자신의 보스인 이완용의 밀명에 따라 일진회 제거 공작에 일진회의 합방청원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해조 등의 다수 민족 인사를 자신들의 합방공작의 제물로 이용했을 뿐이다.

어쩌면 1908년 11월 15일부터 원각사에서 공연된 ‘은세계’(銀世界)‘의 성공은 개화 식자층의 여론을 일정하게 조성했고 이인직과 같은 친일파에게는 그만큼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이인직의 입장에서 ‘은세계’ 공연의 성공은 앞으로 닥쳐올 1910년의 8월 27일 거사(이른바 韓日合邦)의 성공을 예감하는 사전 홍보물이고 이해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애국계몽운동의 위기적 징후다.

이인직의 국민연설회에 이용당한 이해조는 국망(國亡)의 불길한 징조를 감지하고 이미 2년 여 전에 제국신문(帝國新聞)에 연재했던 ‘자유종’을 급박하게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인직의 소설 ‘은세계’가 의도한 항일애국운동에 대한 선유(宣諭)가 문약한 식자층에게 먹혀들고 있고 연극 ‘은세계’ 공연의 흥행이 대중들의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으며, 또한 국민연설회 사건에서 이인직에 이용당한 모멸감과 배신감까지 겹쳐진 상황이 자신의 정치노선을 집약한 소설인 ‘자유종’의 출간을 압박했던 것이다.

1910년 7월 ‘자유종’이 책으로 출간됨으로써 문학 활동으로나 애국계몽 운동으로나 이해조의 가장 빛나던 시대인 1907년-1908년 사이의 웅혼한 기상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견지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자유종’의 주제인 자유와 독립의 정치적 명제가 1908년 초 제국신문에 연재되던 때의 상황보다 더욱더 긴박하게 요구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유종’에서 예리하게 비판한 당대 현실과 몽유록(夢遊錄)류의 염원이 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해조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1910년 7월 30일 ‘자유종’이 광학서포에서 출간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8월 27일 이른바 합방조약이 이완용에 의해 조인되었다. 이로써 ‘자유종’이 추구하던 독립국가의 염원은 좌절되고 ‘은세계’가 의도했던 새로운 세상 즉 일본의 세상이 되었으니, ‘자유종’과 ‘은세계’로 대표되는 두 신소설 작가 이해조와 이인직의 개화를 둘러싼 당대의 대결은 이인직의 ‘은세계’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홍을표 / 동농 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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