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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홍을표2] 이해조(李海朝)와 ‘자유종(自由鍾)’(1)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08월 21일
‘자유종’과 ‘은세계’의 대결

↑↑ 홍을표 동농 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 (주)포천신문사
이해조(李海朝)는 애국계몽기의 최초이자, 최대의 그리고 최고의 신소설 작가이다. ‘자유종(自由鍾)’ 하나만으로도 그는 신소설의 최고 작가이다. 지금까지 신소설의 제1인자 자리를 지켜온 이인직(李人稙)은 근래에 들어와, 친일(親日)의 방편으로 소설을 창작한 친일문학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은세계(銀世界)’는 그의 이러한 친일의도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이해조의 애국계몽의 문학은 ‘자유종’으로 최정점에 달했고, 이인직의 친일문학은 ‘은세계’로 그 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해조는 토론체 또는 단막극의 희곡과 같은 대중 소통적 흡인력으로 대중의 계몽에 직접 뛰어들었다면 이인직은 창극(唱劇)이라는 전통의 형식에 신파극(新派劇)을 결합하여 새롭게 일어나는 대중적 경향성에 자신의 친일문학의 성패의 승부를 걸었다.

확실히 당시 대중 소통의 효과에서는 이인직의 ‘은세계’가 ‘자유종’을 압도하는 듯했다. 새로운 소통형식에 대한 민감성은 일본과 직접 교류의 경험이 있는 이인직이 앞서나갔다. 반면 전통과의 절충적 관계에 서 있는 이해조는 극화(劇化)의 차용에서는 선두를 빼앗겼지만 국치(國恥) 이후의 판소리계 소설의 재창작과 조선가곡의 집성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새로운 극화의 가능성을 꾸준히 시도했다.

근대에 대한 수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지향점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그 방략과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출신 성분과 정치적 성향, 개화사상의 뿌리, 그리고 인맥상의 차이 등이 작용한다고 하겠으나, 본고에서는 두 사람의 정치관이 가장 또렷하게 나타나 있는 두 작품인 ‘자유종’과 ‘은세계’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그것이 이 두 소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아울러 계몽의 명분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어떻게 상이하게 관철하려 한 것인지를 살펴 볼 것이다.

‘자유종’의 발표 시기

1910년 7월 30일 광학서포에서 간행된 ‘자유종’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그 발표 시기가 1908년으로 앞당겨 진다. 우선 ‘자유종’의 등장인물 강금운의 말에서 나온 것처럼(“昨日은 隆熙 이년 제일 上元이니”) 융희 2년은 1908년이다. 현실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데 시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시사토크쇼를 연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토크쇼의 핵심은 타이밍과 시의성이다.

이해조가 그의 계몽사상을 압축하여 토로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급박한 사정은 무엇인가? 융희 2년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난 후 일본이 강제로 정미7조약을 통해 우리나라를 속국의 지위로 떨어뜨린 해의 이듬해다. 이 해에 이해조의 민족적 애국계몽의식이 가장 고양되었던 것은 그의 작품으로 확인이 된다. 1907년과 1908년 간 이해조 문학의 가장 정채 있는 성과들이 양산되었다. 그리고 언론, 교육 등 애국 계몽적 사회활동도 가장 왕성하게 벌인 때이다.

이해조 문학을 통틀어 그의 정치의식이 가장 예리하게 나타나 있고 그의 정치적 비전이 가장 통합적으로 논술되어 있는 작품이 바로 ‘자유종’이다. 그가 불혹에 막 접어들었고 정치의식이 최대로 고양되었던 이러한 때에 ‘자유종’이 발표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출판 관행을 들 수 있다. 제국신문의 기자로서 쓴 그의 소설은 당시 거의 신문에 연재된 후 얼마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신문연재가 끝나고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간적 공백은 작품마다 약간씩 다르다. 이것은 당시의 독서시장에서 출판사의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는 재미없는 작품은 출판사에서 서둘러 출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1908년 신문연재로 발표된 ‘자유종’은 그 형식의 생경함이나 그 구성의 지루함, 주제의 비흥미성 등으로 일반 독자들의 눈을 유혹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신문 연재 후 바로 출간되지 못하다가 세상을 뒤흔든 일대 정치적 사건(헤이그밀사 사건, 고종양위 등)을 맞이하여 이인직이 ‘은세계’에서 기도한 대로 망국(亡國)의 암운이 드리우고 이해조 방식의 계몽이 위기를 맞게 되자 그가 긴급하게 그의 정치적 테제라고 할 수 있는 ‘자유종’ 출간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일제에 의해 바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자유종의 발표 시기는 이해조 문학에서 ‘자유종’의 위치를 바로 잡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유종’의 발표 시기를 1908년으로 상정해야만 같은 해에 발표한 이인직의 ‘은세계’와의 대결이 지니는 의미가 뚜렷해지고 ‘자유종’의 형식상의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자유종’이 이해조 문학에서의 위치가 정립된다.(2회에 계속)

홍을표 / 동농 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0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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