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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이중희] 김일성과 등소평의 대화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0년 07월 26일
↑↑ 이중희 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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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였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과 대만문제를 해결하고 텽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제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수교하기로 최종결정을 하자 북한에서는 크게 놀라워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김일성과 덩샤오핑은 만나게 되고 회담하는 자리에서 김일성은 이렇게 위협했다.
“중국이 이미 우리의 적인 한국과 수교 했으니 우리도 중국의 적인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어야 하겠소.”
덩샤오핑이 싸늘하게 대꾸한다.
“만약 당신들이 대만과 수교 한다면 우리는 당신들과 단교 할 것이요.”
김일성은 꾹 참고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설립한 뒤 북한과 중국은 한때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었다고 홍콩의 한 언론지가 2007년 8월 27일 한.중 수교 15주년 신년특집 기사에서 상세히 보도했다.

북한은 한.중 수교에 불만을 품고 대만과 수교하겠다고 중국을 협박했으나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도 현 상황에서 참고해 볼만한 역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북한은 이듬해에 열린 중국 베이징과 호주의 시드니 간 2000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시드니에 투표해 중국에 복수했다. 당시 개최를 기대했던 베이징은 2표차로 패배해야 만 했다.

북한의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7년 5월 중국은 갑자기 들려온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2008년에 평화조약을 맺은 뒤 수교 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중국은 사회과학원, 중앙당교 등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총 동원해서 대응방안을 연구하느라 부산을 떨어야만 했다. 양국 관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좌에 오른 뒤 더욱 악화됐었다. 북한은 중국의 개혁 충고를 거절했다.

탈북자 문제 처리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중국이 많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방치해 북한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의심했었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주변 대국도 결코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유유히 중국을 협박했다.

현재 중국에는 등소평만한 큰 인물이 없다. 중국의 신문은 북.중간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양국은 여전히 서로 의지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역사를 우리나라 외교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이중희 / 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장, 본지 자문위원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0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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