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시편 41:1~13 가난한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내 젊은 날 한때 영자의 전성시대란 영화가 히트를 쳤었다. 이보연이란 여배우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한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아픔의 적나라한 시대의 생활상이 아니던가. 지금은 공창, 사창가가 거의 사라지고 음성적인 퇴폐문화는 음지로 숨어 버렸지만 개발도상국의 미명아래 독버섯처럼 우후죽순 만연하던 웃지 못할 슬픔의 모습이 있었다.
한때는 곳곳의 역전 뒷골목엔 늙디늙은 젊디젊은 우리의 누이들의 길손들의 옷자락을, 호기심어린 젊은이들의 손을 잡아끌던 아련한 추억의 골목길이기도 하였다. 서두의 성경말씀과 내용과는 조금은 상반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시대는 변하여 경제적인 물질의 퐁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어두운 과거를 관과 하거나 망각하여선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2차 대전에 패하고 어려운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국가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일조하였음을 잊지 않고 있고, 그네들은 지금도 마음으로 물질로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때마다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대 할머니와는 조금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이렇게나마 밥술 뜨고 등 따시게 호의호식 잘살게 되었으나 보리 고개를 잊을 수 없고, 많은 식구에다가 가장은 한물간 퇴직자처럼 능력이 없어 한입 이래도 줄여보고자 가족들은 남의 집 양자(녀)로, 식모로, 공장으로, 차장으로, 다방으로, 술집으로 사창가로 돈 벌이하러 모두들 흩어졌었다. 그나마 하루 세끼는 고사하고 두 끼라도 국수나 수제비로, 고구마로 감자로, 쌀알 몇 알 들어간 멀건 시래기죽으로, 개떡으로 까만 보리밥으로 연명하던 그 시절이 아니었던가?
결국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오는 주인공은 인생 막장의 쓰디쓴 고생을 하던 우리네 불쌍한 누이들이요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구한 삶의 역사가 아니던가. 이리하여 영자의 전성시대라 표제를 붙어 보았다. 지금 여유롭게 사네, 못사네 하면서 아파트 평수가 넓네 좁네, 층이 높네 낮네 하며 우리 형과 아버지 어머니들이 머나먼 이국인 독일의 탄광 막장광부로 피고름 닦아내던 간호원으로,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월남 땅에서 용사로 열사의 나라 노동자로, 열대밀림에서 말라리아에 물려 죽으면서까지 달러를 벌어들인 결과가 아니면 지금 이만큼이라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게 된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러나 가진 자의 횡포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로 풍요속의 빈곤을 곱씹어야하는 괴로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으로 내가 노파심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우리만이라도 낮은 자, 없는 자 편에 서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 해주고 배려와 존중심을 높여가자는 것이다.
잘나가는 시대는 한때이다. 계속 그러하지는 못하리라. 세상은 돌고 돈다. 순환의 법칙은 달라질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동등하고 공평하게 대접 받아야 한다. 형제간에 우애는 무엇인가 같은 대우 속에서 우애와 화목이 있는 것이다.
우리네 짧은 인생 섬기는 지 교회에서 맡은 직무 잘 수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꾸준히 내뿜는 하늘나라 확장과 부흥에 기여하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 꾸중 듣거나 지옥 불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옛 영화제목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한때의 푸르름, 그 푸르름이 빛을 발하고 있을 때 추풍낙엽이 올 것을 대비하는 마음의 글이다. 끝으로 ‘회상’이란 시 한편 적어본다.
회상
골목 어귀에 앳된 얼굴들 지나가는 남정네 손목 잡아 이끌다 동리 아낙네 악담이 소란스럽던 시장 통 여인숙집 골목 수치심 숨기려고 진한 화장, 빌려 입은 색동옷
술 취한 사내 기둥서방 ,포주 등쌀에 허물 벗은 누에처럼 늙은 처녀와 어린 소녀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쓴 옛날 잊으려 열심히 아름답게 살고 있겠지 모진 숙명 같은 고통속의 불쌍한 우리 누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