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1869-1927) 선생은 계몽기 최고의 작가로서 근 50편의 작품을 발표한 우리 문학사의 큰 자산이다. 지금까지 포천에서 이해조 선생을 기념하는 일에 몰두해 온 나로서 그의 문학적 업적에 크게 존경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조 선생을 선양하는 사업을 해 오면서 가장 큰 마음의 고통은 그의 친일 행적에 관한 의혹이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친일을 쉽게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고 제법 그럴싸한 이유로 친일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해조 선생을 선양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활적 문제다. 그래서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의 작품의 친일 의도를 면밀하게 살펴보기도 하고 여러 문서에 나타난 행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일본 총독부의 기관지격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소설들을 면밀하게 읽어본 바, 친일의 의도가 드러난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한 이해조의 친일의혹의 진원지로 거론되는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회원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다 밝혀졌다.
정부가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를 통해 일제하의 친일행위에 대하여 그 전모를 다 밝혔고 그 결과 2005년 5월 31일, 4년 6개월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4부, 25권, 총 2만 1천여 쪽에 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에는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그 보고서의 결과에 의하여 이해조의 친일행위는 해당 없음으로 판명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親日人名辭典編纂委員會)에서 4766명의 친일 인사 명단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도 이해조 선생의 이름은 없다. 당대의 명망가인 이해조 선생이 그의 언행이 글이나 문서로 드러날 만큼 드러났을 터인데 두 번씩이나 크게 털어서 없다면 정말 없는 것이다.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규명위원회에서는 이른바 1급에 해당하는 아주 악질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려 그 친일행위를 규명한 것이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발표한 4,766명은 이른바 2급에 해당하는 일제에 협력한 부일(附日)분자들까지 포함된 인원이다.
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民族問題硏究所)의 박수현 편찬실장의 말에 의하면 이해조는 문학(文學) 분과와 유림(儒林) 분과 두 곳 모두에서 조사됐는데, 문학 쪽에서는 나온 게 없고 유림 분과에서는 친일 의혹의 근거로 제기되는 대동사문회 회원들에 대해서 모두 조사를 했다고 한다.
박 실장에 의하면 대동사문회의 회원으로 명단에 올라 있다고 해서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올린 것이 아니고 그 단체에서의 직위와 역할 및 활동내역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친일 여부를 가려냈다고 한다. 그 결과 뚜렷한 친일 행적이 없어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공정하고 엄정한 조사를 위해 당연한 조치다.
사실 이해조의 기념사업에서 정부의 친일진상규명 작업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록 편찬사업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민간이 나서서 하기 어려운 친일규명 사업을 정부가 나서서 해 주었고, 여기에 더해 민간 학자들의 친일청산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이해조 선생을 선양하는 사업도 사실은 이때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친일의 의혹을 말끔히 벗어버리고 떳떳하게 이해조 선생을 모실 수 있게 된 것이다. 2008년 12월 15일 홍정선 교수 초빙 특강을 비롯하여 이듬해 포천 관내 고등학생 대상 ‘자유종’ 독후감 대회, 서울역사박물관의 이해조 선생 기념 심포지엄, 그리고 금년에 ‘자유종’ 100년제의 연극제, 도서전시회, 문학공모전 등 이해조 선양의 거대한 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이해조 선생의 고향인 포천에서는 이미 다 밝혀진 옛날의 행적을 가지고 친일의혹을 제기하는 미욱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작은 허물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문학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작가의 과거의 행적으로 인한 의혹이나 누명을 안타까워 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해야 옳은 자세가 아닐까? 정부와 민간 학자들의 그간의 친일청산의 업적이 이해조 선생의 고향에서 모처럼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