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어린 골목은 거세게 볼어 오는 바람소리와 “찹쌀떡 사려 메밀무욱--” 하던 묵장수의 외침과 함께 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다 단층집들이 즐비한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이면 가슴의 박동이 커지곤 한다.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이 보이면 갑자기 어린 날의 자신이 그 골목 어딘가에 서 있을 것 같아 화들짝 내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동네 언니, 오빠들 따라 한참을 가면 울긋불긋한 천으로 담장을 친 무당집이 보였다. 거기엔 춘자와 종만이가 있고 돌아서면 채송화, 옥잠화, 분꽃 등 화초밭이 커다랗던 우리집 마당도 있다. 우리는 얼마 전 모두 골목에 살았다. 땅 생김대로 크기대로 마음대로 짓다보니 단독주택이 빽빽한 동네 골목길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넓어졌다가는 좁아지고 휘어지게 마련이다.
가끔은 어떤 부지런한 이 빗자루에 쓸려 정갈하기도 했던 골목은 부스러진 연탄재와 쓰레기들이 널린 생생한 삶의 껍질을 안고 누워있어야 더욱 친근하다. 이 집 저 집에서 일으키는 냄새의 원천이어서 어느 집에서 제수를 장만하는지 간장을 달이는지, 청국장을 띄우는지, 새 봄이 되어 묵은 김장독을 가시는지, 아무리 단속을 해도 울을 넘는 것이 냄새다.
또한 골목은 진실한 일상이 내는 모든 소리의 진원지다. 아침 교회당 종소리에 골목은 늘 새벽잠을 깬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일터로 가는 바쁜 발걸음들이 골목의 건반을 두드릴 때 딸랑딸랑 두부 장수 종소리가 합해지면 골목의 실내악이 연주된다. 한 낮에는 쓰레기차 아니면 오물 수거 차량의 녹음테이프에서 울려나오는 바달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나 악성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로 우리는 클래식에 입문했다.
가끔은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낮잠 자는 아기를 깨우기도 하고 리어카를 끄는 야채, 과일 장수가 저녁 준비하라고 외치고 지나간다. 주부들은 세상에 나가 거센 바람을 맞고 돌아오는 가족을 위해 단란한 밥상을 준비하고 저녁상에 숟가락 젓가락 놓는 소리가 슬프도록 정겹다.
거뭇거뭇 땅거미 지고 어둠에 점령당한 골목은 키 큰 외 알 전등이 눈을 꿈뻑이고 섰다. 배를 곯아도 육십 촉 전구 밑에 영어 책 읽는 아이들 음성이 어스름에 흐뭇하다. 술꾼의 흘러간 가요가 졸고 있는 골목을 지척거릴 때 컹컹! 도둑을 지키는 영특한 개 짖는 소리로 골목은 하루를 마감할 것 같지만 끝내 골목은 잠들지 못한다.
떨어진 가죽 구두를 신고 백방으로 직장을 구하러 나간 아버지! 전문학교 출신의 고등룸팬,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낙의 밤늦은 재봉틀 소리- 골골골 코를 골다 잠깐 새우잠을 자는 골목은 지어미의 구슬픈 베갯머리다. 외출한 딸, 혹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비의 여울목이며 통행금지에 쫓기는 몸을 숨겨주는 골목은 도시의 숲이며 품이다.
골목은 또한 비밀이 없다. 누구네 남정네가 힘이 세고, 어느 집 며느리가 잘 들어 왔는지, 어떤 집의 아이가 오줌싸개인지 다 아는 골목은 소문의 발원지다. 꼭 닫혀진 대문 때문에 적막할 것 같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골목은 검은 시루에 콩나물은 길러 먹을망정 비밀은 기르지 못하는 곳이다.
어느 댁 첩년이 봉변을 당하는 것을 나도 본 일이 있다. 쏟아져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신의 시앗을 맞닥뜨린 듯 그녀의 옷을 찢고 바가지로 물을 퍼 끼얹던 장면이 떠오른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볼기를 애써 가리며 지나가는 미군 짚을 얻어 타고 도망가던 그 여인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듯 집집의 일상을, 개인의 역사와 정서를 고스란히 잉태하고 우리의 기억 세포의 원천을 만들던 곳이 골목이다. 우리 유년을 키운 세포질 화된 기억의 회로이며 향수가 녹아 있는 뇌주름이다.
어느 날, 세상의 다른 길 뒤지며 살다 발걸음 지쳤을 때 한번쯤 찾아오면 그대로 남아 나를 송두리째 껴안을 골목 거기 있으면 좋겠다. 종알거리던 목소리 들려오고 태양을 향해 뜀박질하던 지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기억해 낼 수 있도록. 수십 년에 변한 것이 있다면 가끔 쓰러져 가는 담장을 고친 집과 고르게 깔린 보도, 낡은 페인트를 다시 칠한 정도라면 어떨까.
이 집은 이 씨네, 저 집은 김 씨네하며 누구 네가 살았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금만 변하면 좋겠다. 대문을 두드리면 삐그덕 소리를 내는 대문! 그 때의 춘자가, 아니면 가슴 설레게 하던 남학생 불쑥 얼굴 내밀 것 같은 그 집들이 보고 싶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그때의 어머니 행주치마 두르고 대문 앞, 거기 서 계시면 좋겠다.
신개발과 건설이, 코끼리차와 불도저가 유년이 장착된 칩을 삭제하고 있다.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던 아이들, 구슬치기하는 아이들 재깔거리던 천국의 방울소리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어느 날, 맘모스 동굴의 회벽 밑에서 자신의 골목을 찾지 못해 지워진 기억 회로의 미로를 서성이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