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계에서는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초국가주의를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nation’은 국가 혹은 민족을, ‘trans’는 '넘어서는,' '횡단하는,' 혹은 '변모된' 등의 의미를 지시한다. 그러므로 ‘transnationalism’은 ‘탈민족주의’ 혹은 ‘초국가주의’로 번역되며,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국가 경계선을 횡단하는,’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변모되는 혹은 변모시키는’ 현상을 함의한다.
이를 보다 일반적으로 설명하면, 초국가주의는 문화, 정보, 사람, 자본 등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선을 넘어 거대한 규모로 흐르는 글로벌 현상을 지시하고, 그런 흐름들이 기존의 국민 국가의 의미와 기능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전하는지, 국가와 그 안과 밖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과의 관계를 어떠한 양상으로 변모시키는지 그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문하는 담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 이외에도 초국가주의는 어떤 분과 영역에서 어떤 현상을 지시하느냐에 따라, 혹은 그런 현상을 어떤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정반대적으로 서로 모순되게 논의될 수 있다. 초국가주의는 흔히 '초국가적 기업' 혹은 '초국가적 자본'처럼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기업과 관련된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활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초국가주의는 이주와 이산 현상 자체에서 초국가적 이주가 야기하는 특정 집단의 문화적 혼종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이러한 결과로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삶의 초국가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거대한 흐름을 강조하는 이러한 초국가적 논의가 국가주의의 탈개념화 혹은 국가 통제력의 약화를 생성해 내는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초국가주의는 글로벌 시대에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시민권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범세계적인 시민권과 결부된 긍정적인 가능성을 배태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DMZ를 저마다 다른 관점과 가치기준에 따라 ‘냉전 이데올로기’ 혹은 ‘완충지대’와 같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DMZ는 지난 60여 년간 한반도의 분단과 한민족의 이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잔존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DMZ는 한편으로는 국제법상으로 국가의 병력주둔과 군사시설의 유지가 제한되는 비무장 지역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첨단 무기와 최신예 장비가 전진 배치된 중무장지대인 곳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인문,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잠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완충지역이면서도 동시에 전쟁의 가능성이 엄존하는 곳임에 틀림없다. 특히 DMZ를 냉전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생산적인 비전으로 살펴보면 이곳은 분단의 세월이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되는 과정에서 백두대간의 기상이 남북으로 끊어지고 최첨단 무기가 최전방에 배치된 곳이지만, 역사적 가치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우선 DMZ는 경원선의 종단점인 신탄리역과 경의선의 종단점인 도라산역, 지뢰에 직접 노출돼 있는 민통선 북방마을 9개 군 105개리와 백령도 등 도서지방, 끊어진 철로, 구 노동당사 건물 등의 전쟁의 상흔과 체취와 흔적이 묻어 있는 살아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또한 DMZ는 평양감사와 기생의 전설이 깃든 애기봉 전망대와 한강하류 전류리 포구 등과 같은 역사적인 사료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특히 이곳은 천연기념물인 산양, 재두루미, 검독수리, 사향노루의 최대 서식지이자 번식지일 뿐만 아니라 항로봉의 금강초롱, 대양한 용늪의 끈끈이주걱, 철원평야에 두루미와 황조롱이, 북한강 및 남한강 상류에 산천어, 열목어, 버들가지, 그리고 금강모치 등의 희귀동식물들이 매우 잘 보전되거나 서생하고 있는 세계적인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초국가주의의 관점에서 DMZ를 살펴보면, DMZ는 탈냉전주의와 탈민족주의의 재현 장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초국가주의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본, 정보, 문화의 흐름들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비전을 고려해 보면, DMZ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글로벌 문화공존지대의 토대가 가능하다.
하나의 민족 속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분단국가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DMZ의 탈민족주의적 접근은 남/북을 우익/좌익, 민족주의/반민족주의, 국가주의/반국가주의, 중심/주변, 제국주의/식민주의, 지배자/피지배자, 번영/절망, 그리고 평화/죽음 등과 같은 이분법으로 극단화 할 수 없는 화해와 공생 공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DMZ의 논의는 국민국가의 약화가 아니라 냉전 이데올로기,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중심/주변의 이분법 패러다임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DMZ는 남북 간의 내외적인 경계를 넘나들면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글로벌 문화의 교차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이 국경을 통제하는 강력한 국가의 실체나 민족주의나 제국주의에서 벗어나 이산 시민권, 범세계적인 시민권, 유동적 시민권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DMZ는 글로벌 초문화 공동체의 산실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DMZ는 해원과 신생과 평화의 땅이 되어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며 창의적인 문화를 빚어내는 글로벌 초문화의 공존지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DMZ가 지시하는 그 자체의 협의적 시공간에서 벗어나 초국가주의적 통찰력에 의해 DMZ의 활용 범위를 광의적 시공간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냉전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금까지 신성한 성역으로 간주되어 온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 개념을 탈개념화 하는 의식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제 초국가주의는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되어 우리들 곁에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DMZ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는 포천이 이러한 변화의 흐름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편협한 사고로 이를 거부할 경우 우리지역의 미래지향적인 비전은 영원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