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 학기가 마무리되고 월드컵경기도 8강이 결정되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경기에서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던 태극전사들이 이번에는 원정 16강에 자력으로 올라가 국민들에게 ‘유쾌한 도전’이란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G세대로 일컬어지는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적 스타들과 어깨를 겨누면서도 마음에 큰 부담을 받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한골 먹었다고 주눅이 들지 않고 맞받아서 한 방 먹일 줄 아는 담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태극전사들의 도전이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각자의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독창적으로 풀어감으로써 단지 혹독한 훈련의 결과라기보다는 개성이 가득한 박주영식의 멋있는 프리킥으로 그물을 가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세대의 문화란 역시 독창성에 바탕을 두었을 때 가치가 있어 보인다. 우세한 경기를 운영하고도 골 운이 따르지 않아 우루과이에게 패한 우울함을 떨쳐버리려고 대학원생들과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편 관람하였다. 작품은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희극으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작품이었다. 내용은 ‘말괄량이’ 캐더린을 페투르치아라는 남성이 얌전한 주부로 탈바꿈시킨다는 내용이다.
남성중심 문화에 저항하는 막가파식의 여성을 가부장적 권위로 길들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 수 있다. 더더욱 짧은 핫팬츠를 입고 팔등신의 쭉 뻗은 다리를 자랑하는 신세대 여성들이 거리에 즐비한 시대에 무언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마치 성대결을 벌이듯 남녀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희한한 게임을 벌이는 것이 포복절도의 웃음을 터뜨린다고 해도 그런 패턴의 길들이기는 젊은이들의 감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젊은 연출가 김대환은 기존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풍자하여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김대환은 말괄량이 캐더린을 언어적으로 그리고 힘으로 무력하게 만들어 강력한 가부장적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패트루치아를 전복시켜 등장시키고 있다. 김대환은 원작에는 없는 패투르치아의 몰락된 모습을 작품의 시작과 끝에 배치함으로써 그의 승리를 풍자하고 있다. 술집에서 술주정뱅이로 몰락하여 나타난 그는 패기발랄한 젊은이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과거에 행한 자신의 영웅적 행적으로 반복적으로 자랑하는 그는 이미 반영웅적인 구세대이다.
연출가는 그의 판에 박힌 영웅담에 대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는 우리도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하게 하여 그를 여지없이 풍자해버린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젊은 취객들은 패트르치아의 행적을 연극화함으로써 즐기자고 제안함으로써 셰익스피어 극을 파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선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캐더린과 비앙카역을 신세대 남성들이 성전환하여 출연한다. 연출 김대환은 가부장적 작품을 동성애 코드를 삽입함으로써 그의 독선적 전횡을 희화화시켜버린다. 가부장적 패투르치아가 기껏 농락하는 여성이 사실 동성애적인 게이일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면 얼마나 그의 행위가 우스꽝스러워지는가. 요조숙녀형의 비앙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말괄량이 캐더린에 비해서 얌전하고 가정적이며 순종형의 여성이다. 그녀는 질투쟁이인 캐더린에게 남성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조차 가냘픈 남성배우가 맡도록 하는 것은 관객에게는 독특한 연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우선 그녀는 얌전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교활하게 남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내숭 형이다. 그것도 여성적인 남성배우가 처리하면 매우 야릇한 동성애 코드로 바뀌어버린다.
그녀의 순종적 이미지는 단지 가부장적 문화에 기생하는 듯 보이지만 결혼을 한 후로는 남편의 명령에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 여성주의자로 탈바꿈 해버린다. 결혼 후 누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가의 시합에서 캐더린은 단연코 순종형의 주부의 상징이 된다. 사실 이런 전복은 가부장적 문화란 겉과 속을 구분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가치일 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연출 김대환의 작품이 셰익스피어 원작을 문학적인 측면에서 상당부분 손상하고 있지만 기존 텍스트를 전복하고 신세대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지루한 장대사를 원본에 충실하게 나타내는 것은 저항적이고 팍팍 튀고자 하는 신세대에게는 길게 늘어놓는 성직자의 설교에 불과할지 모른다.
관객들 또한 필요한 줄기는 받아들이되 큰 부담 없이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신세대적 발상을 원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관객들을 무대 위에 끌어들여서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단역으로 참여도 시킨다. 관객을 단순한 소비자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당당한 문화의 생산자로 승격시킴으로써 관람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전략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