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꽃이 피는 봄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달은 여왕의 칭호를 받는 오월이다. 일 년은 열두 달인데 어느 달이 나름의 매력이 없을까마는 하필 오월을 높이 치켜세웠을까. 그것은 아마도 겨우내 생명력이 완전하게 기지개를 켜고 꽃나무들이 만개하여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월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구가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수많은 연인들이 짝을 찾아 낭만을 구가한다. 젊은이들이 쉽게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생명의 연속성을 추구하는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쉽게 마음이 들떠 감정의 충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예이츠는 “젊은 아가씨에게”라는 시에서 노래를 한다.
“내 사랑 나의 사랑아, 나는/누구보다도 더 잘 아노라/무엇이 그대의 가슴을 그토록 뛰게 하는지를/그대의 어머니조차도/나만큼은 그걸 모르리라,/그 열뜬 생각이(그걸 그녀는 부정하고/그리고 잊어버렸지만)/그녀의 피를 온통 들뜨게 하고/눈을 번쩍이게 할 때/그녀 때문에 내 마음 슬프게 하는 게/누구인지를.”
이렇듯 젊은 연인들은 사랑 때문에 가슴이 뛰고 슬퍼하는 것이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감정에 쉽게 빠지는 것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생존을 위한 이기주의의 갑옷을 입고 사랑의 감정이 파고들 틈이 없게 된다. 기성세대들의 감정이 메말라 사막처럼 황량해 보이는 것은 감정의 가치보다 물질의 가치가 앞서기 때문이다.
반면에 젊은이들의 감정은 뜨거운 사막에 한줄기 오아시스의 물줄기 같은 사랑으로 솟아오른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놀음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의 연속성을 이루어내는 귀중한 씨앗이 된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매일 사랑의 시를 몸으로 쓴다. 비록 그 시가 문학적 가치가 떨어지는 감정의 폭포에 불과하지만 그 열정은 사랑의 진정성으로 가득하다.
워스워드는 시에서 감정이 중요하지만 매우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시에서 사용하는 감정을 ‘가장 고양된 상태의 이성’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정의는 일종의 역설처럼 들릴지 모른다. 감정과 이성은 인간의 심리에서 서로 정반대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기에 말장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정의를 깊이 살펴보면 감정과 이성의 조화나 균형이라는 매우 깊은 시론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젊은이들이 사랑의 시를 아름답게 쓰기 위해서는 감정을 쏟아놓기 보다는 가슴 속에 품고 성숙시켜야 한다는 깊은 숨은 뜻이 숨겨있는 것이다.
오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위시하여 각종의 가정행사, 지역행사가 즐비하다. 이런 행사들은 대부분 잃어버린 인간적인 가치를 되찾자는 뜻을 새기는 이벤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루는 시리즈형의 행사들은 자칫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기 쉽다. 그것들이 그저 일시적인 감정풀이에 머물러 있다면 곧 식상하기 마련이다. 어린이건, 어버이나 연인이건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모래 탑에 불과하다.
지금 잠시 쏟아놓은 감정의 수사로 구조가 세워져 있는듯하지만 그 알량한 감정의 물이 말라버리면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 속에 이성이라는 철심이 박혀있어 그 행위의 목적과 근거를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사랑의 감정도 욕망 위에 살짝 바른 설탕 같은 표피적 수준에서 은근한 향기를 풍기는 녹차 같은 품격을 가지게 된다.
결국 사랑이란 그 감정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가 되어야 그 진정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사랑의 이름을 빌리는 자는 자신의 가슴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표상을 품고 있는 자이다. 사랑의 시는 그 감정을 품고 있는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품어서 그 대상에 대한 숭배와 존경이 녹아있어야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 깃든 낭만은 자기도취보다 자기희생을 통해 상대를 자신보다 위해주는 이타주의를 기초로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정희 시인은 “더 먼저 더 오래”라는 시에서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저희가 더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저희가 서 있는 아픔 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라고 진정한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낭만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인 환상을 만들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