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후기산업사회이다. 후기산업사회를 달리 표현하면 글로벌사회, 지구촌사회, 정보사회, 그리고 디지털사회 등으로 명명할 수 있다. 후기산업사회의 주된 특징은 도시가 중심이고 농촌이 주변이 되는 도농 종속관계와 엘리트 교육체제가 심화되는 경쟁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계층 간의 대립과 함께 대기업중심의 동업종 간의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후기산업사회는 경제력이 모든 가치를 주도하는 반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산업사회는 이미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나 세계 각국의 자연재해가 말해주듯이 이제 산업지상주의, 경제제일주의, 성공제일주의, 도시중심주의, 그리고 엘리트중심주의의 경쟁 일변도의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의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만 중시되고, 개인의 행복이야 어떻든 성공과 출세만 하면 된다는 식의 성공제일주의는 앞으로 구식의 야만적인 생활방식이 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이러한 사회를 아마도 신후기산업사회라고 명명할 것이다.
신후기산업사회는 지방 곳곳의 특수한 지역과 지구촌이 함께 하는 글로컬리즘시대, 인간주의와 과학주의가 공존하는 시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시대, 전통주의와 현대주의가 조화되는 복합시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권력과 돈과 명예와 지위도 단호히 거부하는 수평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천혜의 자연환경과 도시적 요소, 전통과 현대, 그리고 도농복합 특성을 지닌 포천은 앞으로 신후기산업사회에 경쟁력 있는 글로벌 도시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누적된 포천의 도시정체성을 평가해 본다면 그것은 산업사회가 조성하는 도시문화의 일그러진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포천에 자연의 삶의 방식이 아닌 기계와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삶의 방식이 지배하였기에 포천의 그 숭고한 근원적인 가치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포천의 근원적인 가치의 왜곡은 결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의 저류에 흐르는 원인을 굳이 살펴본다면 우리 모두의 실존의 몸부림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포천을 산업사회가 주도하는 적자생존의 뒷마당으로 변질시킬 수 없다. 우리가 아무런 대안이나 자구책 없이 이대로 방관한다면 지금까지 우리 지역인들이 그나마 지켜온 산천이 회생불능의 상태로 황폐화 되거나 산업주의자들의 유희적인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는 포천의 근원적인 본모습의 복원을 위한 생태특화산소도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필자는 생태산소도시의 주요 대안으로 특화된 에코빌리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생태주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나무와 식물과 숲이 지닌 그 본질적인 영성에 우리의 삶 자체를 근원적으로 조화시키면서 살아가는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이다.
특히 에코빌리지는 지속 가능한 생명가치, 생명순환, 생명윤리, 그리고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위한 삶의 공존 체제이면서 인간의 거주지와 기후, 식물, 동물, 토양, 그리고 물과의 공존적 조화를 직접 추구하는 공동체 운동이다. 이곳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결합장소이면서도 생명잉태의 실천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에코빌리지는 자연의 영성을 통한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도시와 농촌의 종속관계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평적인 삶의 토대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부자도 빈자도, 그리고 도시인도 농촌인도 없다. 모두가 자연 앞에 평등하게 저마다 개개인의 숭고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에코빌리지는 영원한 농업(permanent agriculture)과 영원한 문화(permanent culture)를 거주지에서 직접 추구하자는 공동체 운동이며, 1978년에 호주의 생태학자인 빌 모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랜이 처음으로 이론을 정립하였다.
일명 생태마을은 농사일에 자연이 지닌 정령과 영성을 접목하고 이것을 영혼이 깃든 일상적인 생활 속에 접목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지역 발행 화폐인 아워화(Hour)와 블루베리농장으로 유명한 미국의 이타카(Ithaca), 명상센터의 메카로 자리잡은 스코틀랜드의 핀드혼(Findhorn), 그리고 다문화 공동체의 산실인 인도의 오로빌(Auroville) 등의 에코빌리지를 벤치마킹하여 우리지역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면서도 한층 더 대중화된 생태특화산소도시를 포천에 얼마든지 건설할 수 있다 여긴다. 포천이 수도권의 허파로서 산소도시를 지향할 때 신후기산업사회의 글로벌 중심도시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지역의 지정학적인 조건 속에 산소도시의 필요충분조건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생태특화도시로서의 포천의 비전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포천을 서울 같은 포천, 혹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포천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 비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가 포천 같은 서울, 혹은 포천 같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를 건설하려는 비전을 실행할 때 세계인들은 한국을 기억하지 못해도 포천을 기억하고 찾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도시의 비전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에서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