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완연하니 포천 마을은 이제야 꽃들이 만발이다. 첫 아기를 임신한 젊은 새댁의 젖멍울 같은 목련이 뽀얗고, 마을 모퉁이마다 고개를 외로 꼬고 서 있는 발그레한 진달래, 수줍은 뺨을 건드리고 온 바람이 까르르 개나리들의 웃음을 전한다.
구불텅 우찔렁- 마을버스가 비포장도로보다 더 비포장도로다운 마을길을 벗어나면 아름다운 꽃잔치는 드물고 도로 가에는 정말 숫자를 세기 어려운 구조물 천지다. 우선 전봇대, 운전자들을 위한 교통표지판, 도로표지판, 마을안내판, 이런 현수막 저런 현수막, 푯말, 해태, 가로등, 신호등! 이름과 기능을 알지 못하는 천선달, 축선달, 국선달들이 즐비하다.
그 뿐인가! 이면도로에는 도로 폭 3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신호등이며, 신호등도 두 종류 이상 서있는 곳이 많다. 살벌한 수도서울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전원도시겠지, 하고 입성한 포천도 별 수 없음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공동묘지에 가면 이유 없이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어떤 물건이든지 누군가 이유가 있어 세웠겠지.
하지만 모두 다 국민의 혈세들이 줄줄 새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이 왜 서 있는지. 깨지지 않은 인도의 보도블록이 왜 새 블럭으로 자꾸 단장되는지. 비단길, 포장도로에서 끼니를 거른 도시서민의 가장이 억울해서 실신하기는 서울이나 시골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눈에 보이는 시행착오형 구조물과 전시물 말고도 국고가 새는 곳은 여러 곳이다. 열쇠를 합법적으로 열 재간이 없는 인사들이 국고의 담장을 쥐처럼 뚫고 있는 현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극성이다. 어떤 어떤 모임 결성, 설치, 오픈! 무슨 무슨 연맹, 협회, 연합, 사업회, 위원회 등! 모두 국고에 의해 운영 되어야할 조직과 단체다.
반드시 필요한 조직과 사회가 있을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성격이 유사하여 꼭 필요치 않은 예술단체들 행사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신문을 펼치면 끊임없이 발족되고 출범하고 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선거철이 다가오기에 사적인 작당과 파당도 더욱 파다하다.
국고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정치 철새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고 자신의 세를 늘여 철새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아니면 모임과 어떤 회를 만들어 평범한 시민과의 구획을 짓고 문턱을 만들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일반인과 차별화 되고 싶은 딱지치기 하던 ‘골목대장형 사회성’이다.
평화와 평등을 향해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해서든지 불평등이란 뱃지를 스스로 달고 있으니 한심하다. 어쨌든 사적인 단체는 제 돈으로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할 바 없지만 사사로운 목적과 국고에 눈독을 들인 공적인 단체가 너무 많고, 여전히 결성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이며 역사서를 지었던 구양수(歐陽脩)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치 일선에서 정치개혁가들이 사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하여 모두 파면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이를 보고 정치이론가들의 파당은 나라에 이롭다, 하는 붕당론(朋黨論)을 임금(仁宗)께 올려 이들을 모두 구하고 있다. 군자는 도를 향해 붕당(朋黨)하고 소인은 이익(利益)을 향해 당을 만드니 그 이익의 근원이 없어지면 바로 해체되고 만다는 것이 소인배들의 붕당이다. 이로써 군자를 가려내 뽑고 소인배를 멀리하고 축출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 시리던 서해 2010년, 백호의 4월도 여전히 잔인했다. 백령도 하늘에 이제 오십여 어린 영령들을 묻은 우리, 수상에서는 정체불명의 부가사의(不可思議)가 물길을 뚫고 우리의 함선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모두 깨어 있어야겠다. 지상에서는 국고의 담장을 뚫을 시골쥐과 서울쥐의 박멸을 위해 쥐 잡는 날을 제정해야 할 모양이다.
“국가천년지대계(國家千年之大計)”를 내다보는 진정한 붕당이 아니라 대부분 소인배들의 작당으로 보여 걱정이다. 부패한 사회에서의 공천(公薦)이란 제도는 이미 사천을 전제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