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도서관에 앉아있다 보면 참 어이없는 일들을 많이 본다. 디지털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쉴 새 없이 일어나 물을 마시러 혹은 신문을 보러 다니는 어른이 있다. 그는 온 몸으로 긍지와 자부를 발산하며 숨죽이고 공부하는 이들을 5분 간격으로 깨우고 있다. 인생의 회한을 지근지근 씹으며 걷는 것 같기도 하고, 큰 철학을 어깨에 짊어진 듯 큰 구둣발 소리를 내기에 그 사람의 뒷모습을 고개를 돌려 보지 않고는 못 버틴다.
대표로 가서 좀 시비를 붙어 볼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날마다 오는 이 사람을 자주 보는 이들이 모두 묵인하기로 무언의 결의를 한 모양이다. 참으로 은근과 끈기의 시민들이다.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데 그는 무엇 하던 사람일까? 주말도 아닌데 대낮에도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남성이라면 명퇴를 당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기업들이 떼지어 도산하고 있는 이 때, 그는 어떤 사연으로 직장에 가질 못하고 도서관에서도 집중 못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우며 좌불안석일까. 그런데 이 어른보다 좌불안석인 청소년이 수없이 많아 큰일이다.
요즘 학생들 모두 중간고사 철이라 도서관은 밤까지 매일 붐빈다. 하지만 만물이 물기를 머금고 춘정이 발동하는 이 때, 인생에서 가장 혈기 방장한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도서관에 박혀 있어야 한다니…. 사실 어른도 참 견디기 어려운 계절 아닌가.
텔레비전이 사람을 얼빠지게 한다느니 바보상자니 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휴대폰으로 인터넷까지 할 수 있다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세기에 살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학원 간다고,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고 와서는 80~90%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메시지 받고 보내느라고, 문자 확인하고, 폰게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강물을 타고 저 넓은 바다로 항해해 갈 아이들에게 항해술 대신 순간을 견디지 못할 장난감을 왜 합법적으로 선사하게 되었을까?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게임방 가자고 친구가 조른다. 생맥주 오백만 마시고 와서 늦도록 공부하자고 여자 친구가 꼬신다. 오늘은 마지막 시험 준비 좀 하려고 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학원은 갔느냐’, ‘어디에 있느냐’ 흉한 뉴스에 조바심을 내는 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약속은 파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전화 한 방이면 날아간다.
이들은 단산으로 어울릴 형제가 흔치 않다. 있어야 모두 학원 시간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 이 괴물이 자신들에게 유용하지 않은 물건인 줄 스스로 알지만 버릴 용기는 더욱 없다. 이것마저 지니고 있지 않으면 혼자 섬에 갇히고 만다. 집에 가도 맞벌이로 아니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부모님도 부재중이다. 외로운 영혼들은 이 괴물이라도 안고 있어야 안심과 위로를 건진다.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이 훈련시키면서 기성세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오지게도 바라는 것이 많다. 아직 자기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연령에게 누가, 언제 이런 발 떠는 괴물을 안겨주기 시작했을까?
삼성반도체에서 조혈계 암 질환 발병자가 속속 죽어나가고 있다. 재벌 기업, 반도체 생산라인, 이십대 초반의 비정규직, 꽃다운 나이들이다. 휴대폰 인구가 수천만 명을 돌파한 소비도시는 우리 청소년들을 순간에 승부하고 찰나에 죽고 사는 즉물적인 인성으로 키우고 있다.
기성질서와 자본주의가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이 모두 거대 자본 먹이사슬의 희생양이다. 재벌기업 위주의 국가경영도 잘 못되면 난파한다. 시행착오가 거듭되는 인생도 난파하기 마련이다. 조울과 심리적 불안과 초조, 심하게는 정신박약으로 훈련시키는 휴대폰, 자라는 십대들에게 여전히 들려주어야 할 것인가! 깜빡이는 등대, 암초에 부딪힌 난파선에서 불안과 초조에 떠는 그들의 눈동자가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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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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