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왔으나 포천의 봄은 늦기만 하다. 긴 사연의 편지를 읽을 꽃그늘이 없고 목련은 이제야 꽃망울, 녹두빛 사슴뿔을 내밀었다. 길고 징하던 그 겨울을 잘 버티고 나와 살구도 앵두도, 앞마당 모과나무도 어김없이 꽃눈과 잎눈이 맺혔다. 이제 고모리 호수도 풀리고 겨울, 그 호랑이의 잇바디도 풀려 가까운 이들이 냉이를 캔다고 쑥을 뜯는다고 가끔 들른다.
어제도 지인 한 사람과 냉이를 캐러 앞마당 건너편 논둑을 따라 산 밑으로 올라간다. 가랑잎과, 삭아버린 지난해 풀들 사이로 잡초와 함께 올라오는 냉이들이 제 뿌리까지 뽑힐 줄 모르고 반갑다고 다투어 까르르 웃는다. 조금 더 올라가자 같은 마을에 사는, 조경을 업으로 하는 이의 밭이다.
거름을 많이 했는지 메타세콰이어 묘목 사이로 여기도 냉이 저기도 냉이이며, 눈을 돌리면 십대들의 여드름처럼 꽃다지 천지다. 군데군데 검정콩 같은 배설물의 임자는 누구일까. 농촌의 포식자 멧돼지는 아니고 새싹을 뜯으러 내려온 노루나 고라니 아니면 토끼들일 것이다. 한 길이나 쌓였던 눈밭에서 무엇을 주워 먹고 겨울을 났을까? 새들의 노랫소리가 봄빛을 실어 나르는 산그늘에, 줄에서 풀려 난 우리 집 검정 호위병이 따라와 자유를 만끽하느라 깝죽댄다.
4월이면 “프라하의 봄”이 아니라 서울의 봄을 노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4.19 정신도 죽어버린 봄나물 언덕에, 서해사건 가족들의 절망과 국민들 애통이 들리는지 마는지 나무는 물을 빨아올리고 무정한 봄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
천 톤이 넘는 선박은 수심 삼십 미터도 되지 않는 바다에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런데 1200톤의 천안함은 그 시각 수심 25미터 바다 위에 떠서 무엇을 하던 것일까. 속초함은 어떤 목표물을 향해 포를 발사했던 것일까. 통화하던 휴대폰들은 왜 9시 15분에- 일시에 끊어졌던 것일까. 왜 사고 시각을 자꾸 바꾸는 것일까. 안에서든 밖에서든 포화에 의한 것이라면 왜 터지고 꿰진 부상자가 없을까.
선박은 어째서 상처도 없이 두 동강 났을까. 왜 생존자 근처에는 기자들 얼씬도 못하게 하고 경찰이 원천봉쇄에 들어간 것일까. 그 시각 그 바다에 무슨 일 일어나고 있나 북한은 왜 비행기 타고 살피러 왔을까. 원흉이 북한이라면 왜 레이더에 잡히지 않은 것일까. 만일 북한이라면 미국의 이지스함과 우리 이지스함이 한참 훈련 중일 때 날을 잡았을까. 생존자들은 왜 장교들뿐인가. 죽어도 안보, 살아도 안보라고 머리 띠 두른 보수들은 이렇게 심각하게 안보가 흔들리는 때 어디로 숨은 것일까. 조선일보는 왜 또 소설을 쓰는 것일까?
지금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으나 14개나 되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약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친일명단이 공개되고 인혁당 사건이라도 해결되어, 죽은 자야 무엇을 알랴만 좌파로 낙인찍힌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그 유족들은 보상을 받았으니 수십 년간의 국민적 공분을 조금은 덜은 셈이다. 20년 30년 40년…. 세월이 흘러도 진실은 언젠가는 규명되게 되어있다. 그것이 역사의 심판이며 불의를 하늘이 좌시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한 시간 반쯤 캤는데 큰 바구니에 나물이 수북하다. 냉이를 캐던 칼을 내려놓고 고모리 호수로 산책을 간다. 길 양쪽으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침엽수림 아래 여기저기 유령의 옷자락처럼 허연 오물들이 쓰레기 천지다. 깊게 쌓인 눈 속에 덮여 지난겨울 백설의 산야를 즐겼는데 눈이 녹자 쓰레기 동산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은 환상이다. 얼음에 박혔던 썩은 시체가 봄이 오자 드러나듯 또 몇 십 년 세월 흐른 뒤 부패했던 이성을 추하게 드러내지 말고 지금 깨끗이 밝혀야 한다. 누가 국가 초계함을 가지고 어떤 내기를 하고 있는지… 그 아까운 생목숨을 수장하면서까지 누가 어떤 장난을 치고 있는지… 누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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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4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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