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잊을 수도, 잃을 수도 없는 고구려의 역사

신 용 철(경희대 명예교수·중국사)

고구려는 우리의 고대 역사이며, 아울러 민족의 자존심이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고난을 당하였을 때, 우리의 정신적 위안이었고, 희망과 용기였다. 특히 고구려는 우리에게 강함의 상징이었다.
한반도 남부의 신라와 백제에 비해 705년을 굳세게 버텨 온 남성적인 힘의 조상이며 조국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버틸 수 있던 마음의 의지할 곳이었으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자긍심이었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개국한 땅 만주 벌판은 우리의 꿈의 무대였고, 백두산이나 천지 및 압록강은 신성하게 여겨졌다.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의 놀라운 영토확장은 항상 위축되고 쪼들려 온 우리에게 가슴을 펴게 하는 힘을 실어주었다.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양만춘(楊萬春)의 용맹함은 우리 어린 소년들의 꿈이었고, 사랑이었고,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황금의 위력이 대단하다해도, 그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역사의 유산이며 정신의 자존심이었다. 일제시대 독립군가의 가사도 요동(遼東), 만주의 넓은 들을 개척한 고구려의 영웅적 조상들을 모범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웅대하고 찬란한 국가인 고구려를 잃어버릴 위기에 있다. 우리의 뗄 수 없는 선조와 찬란한 역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다. 4년마다 되풀이 된 일본의 역사왜곡논쟁의 시비에 휩싸여 온 우리에게 이제 더 큰 역사의 시련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의 역사논쟁은 시기적으로 현재에 가깝지만, 부분적인 작은 문제였다면, 중국과의 이번 역사분쟁은 전면적이어서 민족의 역사가 반쪽이 될 수도 있는 공중분해의 위기에 있다.
지난 세기동안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적이었으며, 더욱이 수 천년 역사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그의 영향력 또한 너무 컸었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이 역사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역사상실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은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우리의 ‘三國時代’는 ‘二國時代’가 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아니라 ‘二國史記’가 될 판이다.
이는 705년간(기원전37∼668년)의 고구려 역사가 떨어져나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전부터 발해(渤海)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고구려가 건국한 땅이나 고조선까지를 포함해서 2000여 년의 역사가 중국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으로부터 4333년의 우리 역사는 기원전 57년 신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의 반을 잃는 것이다.
그런데 이 2000여 년의 시간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영토의 문제이다. 즉 중국은 기원전 427년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평양으로 서울을 옮기기 전의 땅만을 주장했으나 이제는 427년 이후의 고구려, 즉 우리 한반도 북부 역시 중국의 영토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영토는 한강이남의 옛 삼한(三韓)지역만이 남게 된다. 시기적으로 역사의 반쪽을 잃는 것이며, 영토로는 한강 이북의 땅, 즉 오늘날의 북한을 완전히 잃게 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의 위기인가? 그래서 어떤 학자는 ‘제2의 나당전쟁(羅唐戰爭)’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고구려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 제국주의적인 시도’와 이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다음호에 계속).